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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녹슨 철조망을 걷어내는 예술

6월 하순이 되면 나도 모르게 한국전쟁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내가 ‘삼팔따라지’의 자식이라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특히 올해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멈추지 않고, 한반도는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상태인데, 북한은 걸핏하면 미사일을 쏴대고, 핵전쟁 운운하는 판이니 한층 더 전쟁과 평화를 깊게 생각하게 된다.
 
이 무렵이면 흥얼거리는 노래가 김민기의 ‘철망 앞에서’다. “자 총을 내리고 두 손 마주잡고/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 버려요/ 녹슨 철망을 거두고 마음껏 흘러서 가게.”
 
내게는 철조망이 분단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핵전쟁을 걱정하는 판에 철조망이라니…그런데도 어쩐지 철조망이 떠오른다. 그래서 얼마 전에 펴낸 내 소설집 제목도 ‘철조망 바이러스’로 했다.
 
얼마 전에 읽은 강맑실 대표(사계절출판사)의 칼럼이 아프게 떠오른다. ‘이 철조망들을 어찌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이 칼럼은 철새인 기러기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남쪽으로 날아왔다가 가시 박힌 철조망에 걸려 피 흘리며 죽어가는 현장을 생생하게 고발하고, 죄책감으로 가슴이 옥죄어 온다고 말한다.
 
“차가운 바람에 팔랑이는 깃털만이 주검 대신 연신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연한 혀만 들어 있던 부리는 철조망을 끊으려 얼마나 애를 썼는지 피투성이가 된 채 가시 박힌 철조망을 물고 있었다. 그리고 기러기의 눈물. 모든 게 부질없다는 걸 알아차린 뒤 고통 속에서 흘렸을 기러기의 피 섞인 눈물은 길고 가녀린 고드름이 되어 바람에 흔들렸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철조망은 그렇게 무섭다. 우리 가슴 한 가운데 버티고 서있는 철조망은 더 무섭고 완고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올해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화상연설로 이렇게 호소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음악가들이 방탄복을 입고 병원에서 노래 부르고 있습니다. 폭탄이 남긴 침묵을 당신들의 음악으로 채워주기 바랍니다.”
 
폭탄이 남긴 침묵을 음악으로 채운다… 눈물 나는 표현이다. 이런 호소에 화답하듯, 지금 세계의 많은 예술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자신의 위치에서 가능한 다양한 방법으로 전쟁 반대에 앞장서고, 평화를 기원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무자비한 폭격과 민간인 살해, 대량살상무기 사용, 강간, 고문, 부상병과 포로에 대한 적절하지 않은 처우 등… 폐허가 된 도시, 무너져 뼈대만 남은 건물, 피비린내 나는 잿더미 사이에서 울부짖는 어린이들….
 
그깟 예술작품에 무슨 그렇게 큰 힘이 있느냐고 되묻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술에는 그런 힘이 있다고 대답하고 싶다. 음악을 비롯한 예술은 성명이나 말보다 훨씬 길고 강하게 영향을 미친다. 예술은 논리를 뛰어넘어 공감시키는 능력이 크다. 그리고 그런 마음들이 모이면 막강한 힘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런 때일수록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평화를 기원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소설가 무라카미의 말을 곱씹어본다.
 
“음악에 전쟁을 멈추는 힘은 아마도 없다. 하지만 듣는 사람에게 '전쟁을 멈추지 않으면 안돼'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 예술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총과 칼을 땅바닥에 버리도록 한다.
 
우리가 지금 새삼스럽게 한국전쟁을 되돌아보는 것은 아픔을 되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극복의 지혜를 찾으려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뜨겁게 하나로 뭉쳐 녹슨 철조망을 걷어내 철새들이 마음껏 오가는 세상을 향해….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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