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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천 개의 찬란한 태양

돈이 떨어지자, 배고픔이 그들의 삶에 어둠을 드리우기 시작했다. 마리암은 배고픔이 순식간에 삶의 핵심이 되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 굶어서 죽는 것이 갑자기 현실이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기다리지 않으려 했다. 마리암은 어떤 집 과부가 마른 빵을 갈아서 쥐약을 묻혀 일곱 명의 자식에게 먹이고, 자신이 가장 많이 먹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 라일라가 말했다. “눈앞에서 제 자식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할레드 호세이니 『천 개의 찬란한 태양』   “내 아기만이라도 살려 주세요.” 지난주 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 사진이 잊히질 않는다. 엄마들이 갓난아기들을 철조망 너머로 던졌다. 어떤 아기는 낯선 외국 군인 품에 안겼고, 어떤 아기는 철조망 위로 떨어졌다. 목숨을 건 생이별의 현장. 탈레반은 부르카를 입지 않은 여성을 총살했다. 21세기라고 믿기지 않는 야만의 지옥도다.    아프가니스탄 출신 미국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이다. 영화로도 유명한 전작 『연을 쫓는 아이』에 이어 또 한 번 아프간의 비극적 삶을 그렸다. 계속되는 전쟁과 혼란, 궁핍, 폭압적인 이슬람 근본주의로 고통받는 여성들의 얘기다. 스무살도 더 나이 많은 남자와 강제혼인하는 마리암은 결혼하며 처음 부르카를 입는다. “망사를 통해 세상을 본다는 게 낯설었다. …주변을 볼 수 없게 되니 힘이 빠졌다. 그녀는 주름진 천이 입을 질식시킬 것처럼 압박하는 게 싫었다.”   아름답고 역설적인 제목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카불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17세기 시 ‘카불’에서 따왔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찬란 태양 아프가니스탄 출신 철조망 위로 지난주 아프가니스탄

2024-05-29

[독자 마당] 면회 장소

나는 한국공군에서 3년을 근무하고 만기 제대했다. 지금의 김포공항은 과거 한국공군 제11 전투비행단이 주둔했던 곳이다. 다른 부대처럼 정문에서 가까운 곳에 면회실이 있었다. 군 복무 중인 병사와 민간인이 만나는 곳이다. 면회 오는 사람 중에는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고, 애인도 있었다. 그렇게 짧은 시간이지만 서로의 그리움을 나눌 수 있었다.     샌디에이고 인근에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이 있다. 양국을 오가는 차량과 사람들로 종일 붐비는 곳이다. 그러나 미국과 멕시코에 사는 사람 누구나 국경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는 없다. 서류미비자들은 출입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미국에 사는 서류미비자와 멕시코에 사는 가족이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국경 출입국 사무소 옆 담장은 철조망으로 되어 있다. 이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양국의 가족이 만나는 것이다. 다만 철조망 구멍은 겨우 손가락 하나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다. 이쪽에서 손가락을 넣으면 저쪽에서 만져보고, 저쪽에서 손가락을 넣으면 이쪽에서 만져보는 방법밖에 없다. 때로는 엄마가 갓난아기의 손가락을 잡아 철조망 구멍 사이로 넣으면 반대편에 있는 할머니,할아버지가 손주의 손가를 만져보는 식이다.      그런데 헤어진 가족의 손가락을 만지기는커녕 생사조차 알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한국 이산가족들이다. 한반도는 이제 분단 80년이 되어 간다. 그 긴 시간 이산가족들은 많은 고통을 겪었다. 연방의회도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이산가족들이 북한의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결의안을 추진하고 있다.     나는 왜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이 만날 수 없는지 지금도 의아하다. 휴전선 부근에 면회소를 하나 마련하거나 아니면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서라도 남북한 사람들이 만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불가능한 것인가?   서효원·LA독자 마당 면회 시간 이산가족들 한인 이산가족들 철조망 구멍

2024-04-16

[문화 산책] 녹슨 철조망을 걷어내는 예술

6월 하순이 되면 나도 모르게 한국전쟁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내가 ‘삼팔따라지’의 자식이라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특히 올해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멈추지 않고, 한반도는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상태인데, 북한은 걸핏하면 미사일을 쏴대고, 핵전쟁 운운하는 판이니 한층 더 전쟁과 평화를 깊게 생각하게 된다.   이 무렵이면 흥얼거리는 노래가 김민기의 ‘철망 앞에서’다. “자 총을 내리고 두 손 마주잡고/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 버려요/ 녹슨 철망을 거두고 마음껏 흘러서 가게.”   내게는 철조망이 분단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핵전쟁을 걱정하는 판에 철조망이라니…그런데도 어쩐지 철조망이 떠오른다. 그래서 얼마 전에 펴낸 내 소설집 제목도 ‘철조망 바이러스’로 했다.   얼마 전에 읽은 강맑실 대표(사계절출판사)의 칼럼이 아프게 떠오른다. ‘이 철조망들을 어찌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이 칼럼은 철새인 기러기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남쪽으로 날아왔다가 가시 박힌 철조망에 걸려 피 흘리며 죽어가는 현장을 생생하게 고발하고, 죄책감으로 가슴이 옥죄어 온다고 말한다.   “차가운 바람에 팔랑이는 깃털만이 주검 대신 연신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연한 혀만 들어 있던 부리는 철조망을 끊으려 얼마나 애를 썼는지 피투성이가 된 채 가시 박힌 철조망을 물고 있었다. 그리고 기러기의 눈물. 모든 게 부질없다는 걸 알아차린 뒤 고통 속에서 흘렸을 기러기의 피 섞인 눈물은 길고 가녀린 고드름이 되어 바람에 흔들렸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철조망은 그렇게 무섭다. 우리 가슴 한 가운데 버티고 서있는 철조망은 더 무섭고 완고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올해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화상연설로 이렇게 호소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음악가들이 방탄복을 입고 병원에서 노래 부르고 있습니다. 폭탄이 남긴 침묵을 당신들의 음악으로 채워주기 바랍니다.”   폭탄이 남긴 침묵을 음악으로 채운다… 눈물 나는 표현이다. 이런 호소에 화답하듯, 지금 세계의 많은 예술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자신의 위치에서 가능한 다양한 방법으로 전쟁 반대에 앞장서고, 평화를 기원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무자비한 폭격과 민간인 살해, 대량살상무기 사용, 강간, 고문, 부상병과 포로에 대한 적절하지 않은 처우 등… 폐허가 된 도시, 무너져 뼈대만 남은 건물, 피비린내 나는 잿더미 사이에서 울부짖는 어린이들….   그깟 예술작품에 무슨 그렇게 큰 힘이 있느냐고 되묻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술에는 그런 힘이 있다고 대답하고 싶다. 음악을 비롯한 예술은 성명이나 말보다 훨씬 길고 강하게 영향을 미친다. 예술은 논리를 뛰어넘어 공감시키는 능력이 크다. 그리고 그런 마음들이 모이면 막강한 힘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런 때일수록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평화를 기원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소설가 무라카미의 말을 곱씹어본다.   “음악에 전쟁을 멈추는 힘은 아마도 없다. 하지만 듣는 사람에게 '전쟁을 멈추지 않으면 안돼'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 예술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총과 칼을 땅바닥에 버리도록 한다.   우리가 지금 새삼스럽게 한국전쟁을 되돌아보는 것은 아픔을 되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극복의 지혜를 찾으려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뜨겁게 하나로 뭉쳐 녹슨 철조망을 걷어내 철새들이 마음껏 오가는 세상을 향해….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철조망 예술 철조망 바이러스 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 대통령

202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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