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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식량 전쟁

김완신 논설실장

김완신 논설실장

식량 전쟁은 말 그대로 식량을 무기로 싸우는 것이다. A와 B라는 국가가 있다. 농지가 부족한 A는 식량을 전적으로 B에 의존한다. 두 나라 사이가 좋을 때는 문제가 없다. 갈등은 두 가지 상황에서 생긴다. 첫째는 B의 식량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해 수출을 할 수 없는 경우다. 둘째는 양국 관계가 나빠져 의도적으로 식량 수출이 중단된 경우다.  
 
식량 전쟁은 20세기 후반을 지나면서 생소한 용어가 됐다. 글로벌 시대에 식량을 무기로 전쟁에서 이기거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다. 식량 무기화는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 일단 식량은 대체성이 강하다. 특정 식량을 구하지 못했을 때 대신할 식품이 많다. 밀이 주식이어도 최악의 상황에서는 밀만 고집할 수 없다. 칼로리를 얻을 수 있는 다른 식량을 찾으면 된다.
 
또한 수입 곡물이 특정 국가에 편중되는 경우는 드물다. 조건이 조금 나빠도 다른 국가로부터 수입이 가능하다. 20세기 이전에는 각국의 무역이 다변화되지 못했다. 특정 국가의 수입로가 막히면 대체 국가를 찾기 어려웠다. 지리적으로 먼 국가는 운반도 용이하지 않았다.  
 
 이외에 식품의 가공·보존 기술의 발달로 비상시 대비 다량의 식량 저장이 가능해진 것도 식량 무기화를 약화시켰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식량 전쟁을 벌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예일대 티머시 스나이더 역사학과 교수는 “세계 주요 곡물 수출국인 우크라이나의 해상을 러시아가 봉쇄하면 아프리카 등에서 수천만 명이 기아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수단, 에티오피아, 예멘 등이 직접적인 피해 국가이다. 레바논과 시리아도 밀의 70% 이상을 우크라아나에서 가져온다. 우크라이나 곡물 수입 의존도가 높은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 식량 위기를 초래해 유럽을 자극하겠다는 푸틴의 전략이다.  
 
유엔식량계획(WFP)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극심한 식량 불안정을 겪을 인구를 5000만 명 정도 예상하고 있다. 문제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식량 위기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식량 문제가 시급하지 않은 국가들도 전쟁 장기화에 따른 식량 위기를 예상해 사재기에 나설 수 있다. 중국은 이미 전쟁 전후로 미국과 우크라이나에서 예년보다 훨씬 많은 곡물을 수입했다.
 
지구에서 생산되는 곡물은 전체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다. 생산된 식량의 총 칼로리는 인구 1명당 3000칼로리가 넘는다. 그럼에도 지구 인구의 10~15%가 기아를 겪고 있고 그 중 일부가 굶주림으로 죽어간다.  
 
프랜시스 무어 라페는 저서 ‘세계의 기아: 12가지 신화’에서 식량 문제의 원인을 인구 과잉이나 자연 재해가 아닌 불공정한 분배에서 찾고 있다. 생산량 부족이 원인이 아니라 잘못된 분배로 특정 국가나 사회 집단에 편중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식량 무기화는 위험한 발상이다. 무기화로 목적을 달성하기도 어렵다. 미국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소련에 판매되는 식량을 막았지만 수출로가 막힌 식량 가격이 급락하면서 결국 미국 정부의 손실로 돌아왔다.  
 
푸틴은 글로벌 식량 위기를 서방의 제재 탓으로 돌리고 있다. 지난달 30일 푸틴은 “서방국가들의 러시아 제재가 해제되면 농산물을 수출하겠다”며 비난의 강도를 높였다.  
 
푸틴은 에너지에 이어 식량을 볼모로 힘든 싸움이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푸틴의 식량 무기화가 서방을 겨냥하고 있지만 식량 부족의 피해는 아프리카와 중동의 가난한 국가들로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식량은 생명과 인권의 문제다. 식량을 무기로 한 저급한 방식의 전쟁은 승패와 상관없이 도덕성에 치명상을 가져온다.  
 
프랜시스 무어 라페는 ‘굶주림에 책임지지 않으려는 사람이 권력을 쥐고 있을 때 기아가 생긴다’고 말한다. 연민 없는 권력은 항상 위험하다.  

김완신 /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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