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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깜짝 생일 파티의 단상

요즘에는 내 주위에 새로운 만남보다 떠나는 사람이 더 많다. 그만큼 오래 살았다는 이유도 되겠지만 젊은이들도 많이 떠난다. 사고사보다 질병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업상 죽는 사람을 매일 보지만 지인이 떠나게 되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평소 건강관리에 더 관심을 두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에 직장에서 깜짝 생일파티를 열어주었다. 말 그대로 깜짝 놀랐다. 온종일 정말 많은 동료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느라 민망했는데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환자와 가족들로부터 축하 인사를 받을 정도로 요란한 파티였다. 2주 전부터 계획된 파티였다고 한다. 하이라이트는 점식식사였다. 우리 병원 식구들은 음식 주문에는 모두 달인들이다.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음식을 온라인으로 오더 하는지도 놀랍고 또 총알처럼 배달이 된다. 하지만 이날은 모두 손수 음식을 만들어오고, 꽃다발과 선물 공세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조금 부끄러웠지만 행복했고 감동 그 자체였다. 축하 인사는 그다음 날 또 그다음 날까지도 연장이 되었다. 다들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나이를 묻지 않았다. “You are amazing! You are unbelievable! You are our role model!” 모두 한 마디씩 거둔다. 이토록 힘든 중환자실에서 어떻게 30년을 즐겁게 일하고 있는지 모두 놀랍고 신기하다는 인사였다.  
 
중환자실은 오리엔테이션이 일 년이다. 많은 질병과 약과 최신 기계들을 배우는데 일 년이란 기간을 병원에서 과감하게 투자한다. 한 2년쯤 경험이 쌓이면 제법 자신감이 생긴다. 그러다 한 3~4년이 지나면 대부분 탈진상태(burnout syndrome)를 맞게 된다. 이제 젊은이들은 그동안의 중환자실 경험을 가지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기 위해 떠난다. 이 과정을 잘 견디고 적응하게 되면 나처럼 오래 남아있을 수 있다. 나보다 10년 젊은 동료가 나한테 언제 은퇴할지를 묻는다. 난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그녀는 아침마다 일하러 가기 위해 침대에서 나오기 싫어 사투를 벌인다고 한다. 솔직히 말해 난 즐겁고 가뿐한 마음으로 출근한다. 몸도 마음도 깃털처럼 가볍고 행복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조용히 나 자신을 뒤돌아본다. 사춘기와 청년기 시절을 나는 유독 힘들게 보냈다. 먹고 자고 학교 가는 일상생활이 지루하고 흥이 나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문학소녀를 꿈꾸며 책 속에 묻혀 살았다. 대학 시절에는 독서클럽에 가입해 ‘책이 아니면 죽음을’ 하는 자세로 지냈다. 모든 진리는 책 속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My body is not me but mine, my spirit is not me but mine” 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 이후 이 결론은 내 삶에 녹아있다. 나의 몸과 정신은 그 자체로서 내가 아니고 내 것이다. 내가 창조해 나갈 수 있다는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내 몸과 마음은 내 것이니 내가 정성스럽게 가꾸어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인생이 너무 짧다.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갔다고 푸념한다. 하지만 내 생을 돌아보면 참 긴 여정이었다. 나이만큼의 시간을 입고 겹겹이 쌓아온 자아가 지금의 나이고 과거의 나이고 미래의 내가 된다. 니체는 초인이 되기 위해 세 단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한다. 낙타, 사자, 어린아이 - 낙타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사회가 정해 놓은 규칙에 순응하고 복종하는 삶, 사자는 자신을 가로막는 것과 싸워 이겨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는 용기를 가진 자, 어린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규칙을 만들며 놀이를 즐긴다. 자신이 겪어낸 삶의 과정을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삶을 놀이처럼 즐겁게 만들어 간다고 했다. 이 니체의 정신은 내 피 속에 녹아있다.

정명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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