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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토요일 아침의 발품 팔기

“요즘 물가가 너무 올랐어.”  
 
“식당에 가도 먹을 것이 없어.”
 
지인들이 모이면 물가 타령을 한다. 어느 토요일, 지인들을 데리고 우리가 평소에 다니는 시장으로  갔다. 한 삼십 분을 차로 가면 도착한다. 주말 아침이면 일찍부터 스패니시, 동유럽, 이슬람 문화권 등 다양한 인종이 모여든다. 시장통에는 야채와 과일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노점에 넘치도록 담아놓은 먹거리 사이로 사람들이 살 것을 찾아 걸어 다닌다. 친구는 과일에 굶주린 사람처럼 딸기를 4통이나 담는다. 캔탈롭, 파인애플, 파파야도 집어넣는다.  
 
“싸고 싱싱해.” 평소에 살림을 알뜰하게 하는 그녀가 하는 말은 믿을 만하다.  
 


나는 계산대에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앞에 선 아주머니의 카터에 녹말가루가 든 노란 통이 꽂혀 있다. ‘저것을 어디서 찾았지?’ 가격 딱지를 유심히 들여다보니, 1.99달러라고 적혀 있다. 아주머니의 카터 안에는 빨강 토마토, 노랑 주키니, 보라 비트, 하얀 버섯 등 색깔별 야채가 가득했다. 옆 모습을 흘끗 보니 대가족의 ‘마마’ 같은 이미지다. 부엌에서 국자를 휘두르며 자손들의 먹거리를 지휘하는 위엄이 보인다. 다양한 연령대의 손자들은 앞 층계에서 놀다가 저녁 먹으라고 부르는 할머니 소리에 후다닥 뛰어들어갈 것이다. 그날의 일을 마치고 돌아온 고단한 아들, 딸들은 마마의 고향 음식에 이민 생활의 빡빡함을 위로받을지도 모른다. 네모 곽 안에 든 치킨 브로스가 아니고 유리병 안에 든 토마토소스가 아닌, 진짜 닭국물과 진짜 토마토로 만든 파스타를 앞에 놓고, 맥주 뚜껑을 따며 왁자지껄한 저녁을 마감하는 그림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도 이 아주머니처럼 장바구니를 가득 채웠다. 요즘 같은 물가 고공 시대에도 저렴한 가격 탓인지 그리 부담되지 않나 보다.
 
우리는 발품을 팔면서 이 골목 저 골목에 펼쳐진 야외 시장을 기웃거린다. 온갖 잡동사니가 박스에 담긴 채로 엉성한 진열대에 놓여있다. 박스에 얼굴을 박고 뒤져 봐야 하나? 그냥 지나치면, 손해라도 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저기에 ‘아스파라거스 전문가’도 보인다. 산에서 내려온 듯한 수염이 무성한 노인이 잘 키운 아스파라거스를 몇 개씩 화초처럼 나무 원통에 담아놓고 판다. 대파, 시금치, 무가 이른 아침에 흙을 떨구지도 않은 채 주인을 따라와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있다.  
 
우리 일행은 장 본 것을 차에 싣고는 헤어지기 아쉬운 듯 파킹장을 떠나지 못한다. 예전 같으면 어디 다이너에 가서 아침이나 먹자고 말을 꺼낼 텐데. 어느 누구도 가자고 선뜻 말하지 않는다. 하긴 나도 요즘 식당에 가는 것을 피한다.  
 
“우리 집에 가서 커피 한잔하실래요?” 내가 말을 꺼냈다. 만장일치로 좋다고 한다. 집으로 가는 차 속에서 나는 궁리를 한다. ‘커피와 같이 먹을 것이 없을까? 아, 아까 산 통밀빵이 있었지!’ 아직도 따뜻한 피타 브레드는 이스트와 통밀만 들어갔다는데, 쫀득거리는 풍미가 있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다행히도 삶아서 찢어둔 닭고기가 있었다. 친구는 오늘 장본 야채를 꺼내서 큼직하게 썬다. 피타 브레드를 반으로 자르고 야채와 닭고기를 나란히 접시에 담았다.  
 
다크 로스트 커피를 내렸다. 그윽한 짙은 향이 몇십 년 살아온 노고를 알고 있다는 듯이 우리의 마음을 감싼다. ‘코로나도 넘겼는데 이런 불경기쯤이야…’ 속이 가득 찬 반달 같은 빵을 우리는 한입 가득 베어 문다.

김미연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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