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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선물과 카드

한홍기

한홍기

선물은 원래 인간관계를 풍족하게 해준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 고마움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선물이 크거나 비쌀수록 좋기는 하겠으나 받는 사람이 정도를 지나쳤다고 생각하면 고마움보다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가족이나 친지, 친구 관계가 아닌 경우에는 거부감을 더 크게 느끼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선물은 사회적 관계라기보다는 가족적인 성격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카드는 선물과는 달리 전혀 구애를 받지 않고 아무데서나 소통이 잘 돼 미국에서는 카드 교환이 중요한 일상 생활의 하나로 일찍이 자리를 잡았다. 더구나 감사 문화가 대표적인 미국에서는 카드만큼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게 없다.
 
크게 개의치 않을 일에도 아무에게나 심심하면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는 미국인들의 습성으로 카드는 입으로 하는 구호를 지나 손으로도 전달해야 만하는 중독성 물질이 되었다. 그걸 통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친구로 만들기도 하고, 틀어진 사이였으면 오해를 불식시켜 다시 친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카드를 제일 먼저 주고 받는 것은 아무래도 가족이다. 아이들이 부모와 걸핏하면 카드를 내미는 것은 기대 충족감과 더불어 상대방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다.  
 
미국은 자녀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모와는 영원히 이별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카드 산업이 엄청나다. 재미있는 것은 어른들은 종이 카드를, 자녀들은 인터넷 카드를 주로 이용하는데 서로가 바꿔서 받자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아무래도 어른들은 손에 무언가 잡혀야 실감 나고, 자녀들은 우체통에 넣는 번거로움보다 컴퓨터 클릭 한 번에 간편하고 음악도 나오는 것을 좋아한다.
 
이러니 가족 말고 친척, 친구까지 필수적으로 챙겨 줘야 하고, 주위의 아는 사람들까지 챙기려니 카드 노이로제에 걸릴 만한데 여기서는 일상사가 되었다. 특히 연말 가까이 되면 미국 전체는 선물과 카드로 대 전쟁을 치른다. 11월 넷째 목요일 추수감사절과 12월에 성탄절이 있어 한 달간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인데, 특히 자녀들은 시집 장가를 갔어도 성탄절에는 대부분 부모 집을 찾아오는 게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이때에는 귀성 비행기를 오래 전에 예약을 하여야만 하고 때로는 비행기가 날씨 관계로 결항이라도 되면 공항 안에서 새우잠을 자는 것도 다반사다.
 
미국의 가정은 대부분 추수감사절이 바로 끝나는 11월 말부터 한 달간 앞마당은 물론이고 거실에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이 일반화 되어 있다. 진짜 나무든 가짜 나무든 그 나무 밑에는 친척을 포함해 각자 사 온 선물을 며칠 전부터 수북이 쌓아 놓고 성탄절 늦은 아점을 든 후 다들 모여 바로 뜯기 시작한다. 선물에는 카드가 붙어 있기 마련인데 이때 이걸 읽고 한번 껴안아보고, 선물 뜯으며 또 한번 껴안는다. 일년 내 못다 한 애정을 만끽하는 순간이다. 개중에는 큰 것이 있어 좋아라고 뜯어보면 솜으로 만든 큰 인형이 있지를 않나, 작년에는 나 같은 경우 쓰레기통이 들어있는 황당함도 겪어 보았다. 집안 쓰레기통을 십 년을 썼더니 아주 부실해져 갈아야 될 때라고 모의를 한 모양이었다. 집안 견공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개 모자, 개 목도리, 개 장갑까지 등장한다. 견공 나리까지 이렇게 같이 덩달아 난리를 치다 보면 이른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된다.
 
미국에서 이상한 점은 밸런타인데이는 친구끼리도 카드를 주고받기는 하지만 부모 자녀 간에 교환이 그보다 더 많다는 것이다. 아마 무슨 특정한 날이라는 개념 없이 무조건 줘서 나쁜 게 없다는 식인 모양이다. 하여튼 카드를 무척 좋아한다. 그리고 카드 가는데 꽃이 따라 가면 더욱 값져 보이기도 한다. (hanhongki45@gmail.com)
 

한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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