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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나이를 이겨낸 열정

 원로화가 장정자 화백의 개인전이 잔잔한 화제가 되었다. 평생 그림을 그렸는데 80대 중반의 나이에 이르러 비로소 첫 개인전을 열었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았고, 전시장을 가득 채운 검은색 위주의 그림들이 내뿜는 곰삭은 연륜의 향기와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도 높이 평가할 만했다.
 
이번 장정자 개인전은 나이 탓하며 의욕을 잃어버린 노년층에 용기를 주었고, 타성에 젖어 게을러진 후배 작가들에게는 따끔한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우리 미주한인 예술계의 고질적 문제인 고령화에도 작은 희망이 되었을 것으로 믿는다.
 
날이 갈수록 노령화되어가는 미주한인 예술계의 현실에서 90대의 고령에도 나이의 한계를 극복하고 부지런히 시를 써서 발표하는 박복수 시인이나 80대 중반의 나이에 미주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하고 첫 소설집을 펴낸 민원식 작가 같은 분들은 큰 힘이 된다. 그밖에도 나이를 잊고 열심히 활동하는 많은 노익장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물론 이 같은 원숙하게 농익은 열정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몸과 마음과 정신이 모두 건강해야 비로소 가능하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해보지도 않고 “이 나이에 뭘 하랴?”고 퍼질러 앉아버리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나이 먹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반드시 있는 법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과감한 변신이 어려워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겁이 많아지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관성(慣性)이 강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습관으로 작품을 하는 ‘언어 기능공’이나 ‘조형 기능공’으로 전락하기 쉽다.
 
어느 분야나 비슷한데 일단 자기 작품 세계를 인정받고, 어느 정도 명성이 생기면 그에 알맞은 성공이 보장되고, “아무개 작가는 어떠어떠한 작품을 한다”라는 식의 틀이 만들어진다. 그걸 ‘개성’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고 거기에 안주하게 된다. 그리고 매너리즘이라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된다.
 
물론 예외도 있다. 말년에 과감하게 변신하여 멋지게 성공한 작가들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김환기 화백의 대표작인 전면 점화(點畵)는 생애 마지막 몇 년 뉴욕에서 활동할 때 피어났다.
 
박생광(1904~1985년) 화백 같은 작가도 좋은 예다. 내고(乃古) 박생광 화백은 한국현대미술사의 새롭고도 독창적인 장르를 구축해낸, 수묵채색화의 거장으로 평가 받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작가다.
 
그런데 이런 성취가 생애 마지막 8년 동안의 놀랍고도 대담한 예술적 변신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일본에서 오랜 동안 공부하고 해방 후 귀국하여 지방에서 활동하면서 일본풍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평가 받다가 70세가 넘어서 과감하게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지극히 한국적인 주제를 수묵화에 강렬한 오방색의 채색을 혼합하는 독창적인 기법으로 표현한 작품을 선보인 것이다. 강렬한 색채와 자유로운 화면 구성을 통해 한국의 토속적인 정서와 민족성이 생명력으로 들끓어 오르는 그의 작품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역사를 떠난 민족은 없다. 전통을 떠난 민족은 없다. 모든 민족예술에는 그 민족 고유의 전통이 있다.” 박생광 화백의 말이다.
 
한국적인 주제를 다루기 시작하면서 호를 ‘그대로’로 바꿨고, 작품에 적는 제작연도도  서기가 아닌 단기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새로운 작품세계를 연지 얼마 안된 1985년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붓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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