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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최장수 군주 엘리자베스 2세

 영국의 최장수 군주 엘리자베스 2세
 
김건흡
MDC시니어센터 회원
 
살아있는 사람에 대해 역사적 평가를 내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지난  70여년 동안 엘리자베스 2세가 통치했던 영국은 무사했고, 영국인들에게 ‘마음의 여왕’이 됐다.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인들에게 어떤 존재인가. 영국인들은 왜 왕조를 유지한 것인가. 이 질문은 이렇게 바꿔볼 수 있다. 영국의 왕가는 몰락한 다른 왕가들과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명예혁명이 끝나고 얼마 후, 영국에는 왕위를 이어받을 스튜어트 왕가 자손이 바닥나 버렸다. 결국 의회는 독일에서 스튜어트 왕가의 먼 친척을 데려와 왕으로 삼았다. 그가 바로 하노버 왕조의 시조인 조지 1세다. 평생 독일에 살았던 조지 1세는 영국의 정치상황에 대해 잘 몰랐고 아예 영어조차 못했다고 한다. 그 후 영국에서 정치적 실권을 쥔 것은 의회였고 왕은 자연스럽게 정치에서 배제되었다.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하노버 왕조의 가장 큰 문제는 ‘나라를 다스리지 않으면서 어떻게 왕의 위엄을 유지하느냐’ 였다. 어떻게 해야 군주로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것인가. 시간이 걸렸지만 하노버 왕조는 그럭저럭 자신의 역할을 찾아냈다. 그것은 국기나 국가처럼 왕이 국가를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 되는 것이었다. 요컨대 왕의 역할이란 대외적으로는 영국을 대표하고, 대내적으로는 계급은 달라도 우리는 폐하의 신하라는 충성심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이 모든 역할을 아주 잘 수행했던 하노버 왕조의 군주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빅토리아 여왕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독일 출신,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의 둘째 아들과 결혼했는데, 그 때문에 빅토리아 여왕의 아이들에게는 하노버가 아니라 작센-코부르크-고타라는 성이 붙게 되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작센-코부르크-코타 왕조가 시작되면서 영국과 독일의 관계가 아주 나빠졌다. 세계 1, 2차 대전이 일어나자, 영국과 독일은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적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입장이 곤란해진 것은 독일에 본가를 두고 있는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였다. 더군다나 1차 세계대전 후에 얼마나 많은 왕조들이 무너졌던가? 그들도 같은 꼴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러한 몰락을 막기 위해서,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는 대대적인 혁신을 단행한다. 우선 작센-코부르크-코타라는 성부터 '윈저'로 바꿨다. 그리고 라디오 연설을 통해서 전쟁의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들을 격려했다. 또 국민들이 싫어한다면 외국 왕가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1926년 4월 21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녀에게는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엘리자베스는 어머니의 이름을 따온 것이고, 알렉산드라는 증조할머니의 이름을, 메리는 할머니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그녀의 가족들은 그 긴 이름 대신 그녀를 릴리벳이라고 불렀다. 릴리벳이 태어났을 때만 해도 그녀가 고조할머니처럼 여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다음 왕위는 조지 5세와 메리 왕비의 큰 아들이었던 에드워드 왕세자가 이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예상대로 조지 5세가 죽자 에드워드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그가 바로 에드워드 8세다. 그러나 에드워드 8세는 왕위에 오른 지 1 년도 못 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포기했다. 이것이 세기의 스캔들이라 불리는 윈저공과 심슨 부인의 로맨스다. 이제 영락없이 차남이자 릴리벳의 아버지인 앨버트가 왕위를 물려받아야 할 차례였다. 그것도 아무런 준비도 없이... 거기다가 앨버트는 사람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말더듬이가 아니었던가! 1936년 결국 앨버트가 왕위에 올랐다. 그가 바로 조지 6세이다. 더불어 릴리벳은 아버지의 추정 상속인이 되었다. 그 말은 앞으로 남동생이 태어나지 않는 한, 그녀가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되자, 릴리벳의 교육문제가 중요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릴리벳은 아버지, 조지6세처럼 되지 않기 위해 이 때부터 왕에게 필요한 교육을 받아야 했다. 또 큰아버지처럼 되지 않기 위해 개인의 행복보다는 국왕으로서의 책임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배워야 했다. 왕이 되기 위해 필요한 학문은 훌륭한 교사들 밑에서 배우면 그만이지만, 국왕으로서의 책임은 교사들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릴리벳에게는 군주로서의 책임을 가르쳐줄 누구보다 훌륭한 선생님이 있었다. 바로 릴리벳의 할머니인 메리 왕비와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왕비였다. 할머니 메리 왕비는 엄격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무엇보다 왕실의 위엄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기 아이들에게 대중 앞에서 사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말라고 가르쳤다. 어머니 엘리자베스 왕비 역시 왕실의 의무가 무엇인지 분명히 아는 사람이었다. 릴리벳이 열세 살이 되던 해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런던이 독일 전투기에 폭격을 당하자, 릴리벳과 그녀의 동생 마가렛은 버킹검 궁을 떠나 윈저 성으로 피난을 갔다.  
전쟁 중 메리 왕비와 엘리자베스 왕비는 누구보다 먼저 솔선수범하고 애국심을 발휘했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했던 것은 국민들에게 선심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아무리 신분이 높다고 해도 시대의 요구에 맞춰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그 자리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그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생존전략이었던 셈이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릴리벳은 열여덟 살이 되자 아버지 조지6세를 귀찮게 졸라댔다. 자신에게도 조국에 봉사할 기회를 달라는 것이었다. 요컨대 자신도 입대해 직접 전쟁에 참여하고 싶다는 것이다. 딸을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 보낼 수 없었던 조지6세는 결국 타협책을 찾아냈다. 1945년 3월 릴리벳은 영국 여자 국방군에 입대했다. 릴리벳의 계급은 소위였다.  릴리벳은 다른 병사들과 똑같이 트럭을 몰거나 탄약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 지금까지 거친 일이라고는 해본 적 없었던 그녀가 흙바닥에 앉아 타이어를 바꾸고, 보닛을 열어 엔진을 수리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현재 총 25억의 인구를 가진 영연방 15개국의 수장이다. 그런데 지금이 대체 어느 시절인데 그것도 명색이 민주국가에 군주가 존재한단 말이냐는 의문이 생기기는 한다. 아무리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지만 말이다. 그러나 영국에서 왕실은 국민 통합의 도구로 꽤나 유용하다고 할 수 있는데 사회구조와 사고방식이 급변해온 와중에도 그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상당 부분 이 엄격하고도 노회한 여왕의 역량 덕분이라고 하겠다. 여왕은 본인의 역할을 전통의 수호자이며 같은 자리에서 변함없이 국민을 보호하는 자로 설정하고 그와 같은 이미지를 조심스럽게 생산해 왔다. 현실 정치에 개입하지는 않지만, 적정한 가이드라인을 주는 믿을만한 존재인 것이다.  또 늘 바뀌고 사적 욕망을 추구한다는 느낌을 주기 마련인 선출직 정치인들과 대조적인 안정감을 준다.  
지난해 4월 여왕은 남편 필립공(99)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여왕은 70여 년간 자신의 곁을 지키며 외조를 해왔던 필립공과 큰 잡음 없이 해로했지만, 자식문제로 골치를 앓아왔다. 아들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이혼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으며 ,다아애나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졌을 때는 왕실을 향한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올해로 즉위 70주년을 맞았다. 현군주중에 단연 최장수다. 여왕의 즉위 70주년을 기념하는 ‘플래티넘 주빌리’축제가 지난 2일부터 나흘간 영국과 영연방 전역에서 성대하게 펼쳐졌다. 여왕은 1년에 두 차례 생일축하를 받는다. 실제로 태어난 날인 4월21일, 그리고 6월초에 열리는 ‘공식 탄생일’이다. 공식 생일축하 행사는 5월말에서 6월초에 걸쳐 날씨가 좋은 날을 잡아 따로 열린다, 영연방 국가에서는 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한다. 영국인들은 역사적 순간마다 구심점이 되어준 그를 ‘마음의 여왕’으로 여기고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보내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삶은‘살아있는 현대사’ 그 자체다. 

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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