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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칸영화제의 두 남자

“내 인생에는 이제 내리막길만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박찬욱 감독의 말은 뜻밖이었다. 2004년 40대 초반의 그가 ‘올드보이’로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직후였다. 당시 한국영화의 칸영화제 수상은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받은 이후 사상 두 번째. 더구나 심사위원 대상은 작품에 주는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다음으로 큰 상이다.
 
현장에 있던 취재 기자의 느낌으로는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을 운운하면서 벅찬 감격을 마냥 쏟아내도 될 것만 같았는데, 박 감독은 달랐다. “내리막길”이란 표현에 대해 “지금 정점에 올라 최고로 기쁘다는 뜻”이라고 덧붙이는 말투조차 담담했다.
 
어쩌면 그는 수상의 영광이 멍에가 되는 일을 경계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올드보이’는 칸 경쟁부문 초청작 중에 예외적인 경우였다. 이 콧대 높은 영화제가 주요 작품에 월드 프리미어, 즉 세계 최초 상영을 고집하곤 하는 것과 달리 ‘올드보이’는 그 전년도에 한국에서 개봉해 호평과 함께 흥행 성공을 거뒀다. 한국 관객들에 비하면 칸은 이 영화를 뒤늦게 ‘발견’한 셈이었다.
 
자조적 예상과 달리 박찬욱의 영화 인생은 내리막길로 치닫지 않았다. 대신 올해 칸영화제에서는 감독상이라는 큰 기쁨을, 오랜 동료 송강호의 남우주연상과 한 무대에서 누렸다. 수상으로만 따지면 송강호야말로 칸의 발견이 한국 관객들에 비해 늦어도 한참 늦은 셈.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서 보듯,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 보듯 그는 나 홀로 북 치고 장구 치며 연기 잘하는 배우가 아니다. 동료 연기자들과 앙상블을 이루면서, 때로는 한 걸음 뒤에서 동료를 돋보이게 하면서 놀랄만큼 연기 잘하는 배우다. “꼭 상을 받기 위해 어떤 형태의 연기를 해야 하고 어떤 포지션을 갖춰야 한다는 건 의미 없는 얘기 같다. 배우들은 자유로워야 하고 끊임없이 그런 것에서 해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수상 직후 그가 칸에서 했다는 말이다.
 
두 사람의 이번 수상은 때로는 까칠하고 때로는 열광적인 시선으로 이들의 영화를 수십 년 지켜본 한국 관객들로서도 충분히 자부심을 느낄만한 결과다.  
 
이제 한국 대중문화의 힘은 돌출적인 사건이 아니다. 송강호와 함께 ‘브로커’에 출연한 아이유가 레드카펫 주변에 몰려든 현지 팬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는 모습도 묘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칸의 주역들의 젊은 날이 그랬듯 과연 지금 한국 영화의 미래를 위한 씨 뿌리기가, 새로운 재능을 발굴하고 기회를 마련하는 일이 충분히 진행되고 있는지. 물론 그전에, 이번 달 차례로 개봉하는 송강호 주연의 ‘브로커’와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보러 극장에 갈 일이 즐겁게 기다려진다.

이후남 / 한국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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