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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증오의 사회가 만든 비극

기억은 세월이 만드는 삶의 무늬다. 미움과 증오로 깊숙이 아로새겨진 무늬는 험하게 살아온 인생의 흔적을 나타내고, 기쁨과 감사가 만든 매끈한 무늬는 너누룩했던 세상살이를 떠올린다.  
 
역사는 기억과 망각 사이로 흐른다. 기억이 새긴 무늬를 망각이라는 지우개가 뒤쫓아 오며 지운다. 망각의 강을 건널 때마다 작고 가벼운 일상의 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깊게 팬 무늬만이 역사라는 이름으로 남는다.  
 
컬럼바인 고등학교, 버지니아 공대,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 사건에 이어 5월 24일, 텍사스주 유밸디의 롭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은 미국 사회에 쉽게 지워지지 않는 슬픔이라는 또 하나의 짙은 무늬를 새겨 놓았다.  
 
지난 4월 12일, 뉴욕 브루클린의 지하철역에서 방독면을 쓴 괴한이 최루탄을 터트리고 총을 난사했을 때도, 5월 12일, 댈러스 한인타운의 한 미용실에 괴한이 들어와 총을 쏟았을 때도, 이틀 후 뉴욕주 버펄로시의 한 수퍼마켓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겨냥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바로 그다음 날, 라구나우즈의 대만계 교회에서 총기 사건이 났을 때도 그저 먼 동네에서 일어난 남의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번에 롭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은 다르게 다가왔다. 꽃다운 초등학교 학생들 열아홉 명과 두 명의 교사가 무참하게 목숨을 잃은 사건을 한 사람의 정신 이상자가 벌인 개인적 일탈이라고 여기기에는 그 대가가 너무도 참혹했다.  
 
아무리 미국의 수정헌법 2조가 ‘무기를 소유하고 휴대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라고 규정한다고 할지라도, 18살짜리 청소년이 반자동 소총과 수백 발의 총알을 술보다 더 쉽게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총기 사건이 날 때마다 인터넷 총기 거래를 규제하고, 총기 구매 희망자의 신원 조회를 강화해야 한다는 등의 총기 규제안이 등장하지만 이를 반대하는 정치인들에 의해서 흐지부지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미국에는 4억 정 이상의 총기가 퍼져 인구보다 많은 총기를 가진 세계 유일의 국가가 되었다.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 아이들보다 총기에 의해 목숨을 잃는 아이의 숫자가 더 많은 나라가 되었고, 하루에 거의 두 건 정도의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는 험한 나라가 되었다.  
 
이제는 학교나 교회에 갈 때도, 미용실이나 마켓에 들를 때도, 지하철을 타거나 프리웨이를 운전할 때도 총에 맞을까 봐 걱정하는 세상이 되었다. 과연 이런 세상이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단 말인가?  
 
아니다. 미움과 증오라는 무늬를 이 사회에 새긴 것도 우리다. 사랑과 정의를 잃어버린 세상을 방조한 책임도 피할 수 없다. 개인적 유익만 추구하면서 이웃을 돌보는 일에 소홀했던 우리야말로 이 일의 또 다른 공범이다. 우리만 잘 살면 그만이라며 세상의 아픔을 외면하던 오만방자함은 또 어쩌란 말인가.
 
다음 세대가 살아가야 할 세상을 안전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하는 의무다. 총기 사고로부터 안전한 나라가 되도록 마음을 모을 때다. 유밸디의 총기 참사로 자녀와 가족을 잃은 모든 이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길 기도한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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