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난장] 경주서 온 미남불, 어디가 제자리일까
일제강점기 무단 방출
데라우치 총독에 상납
경주 시민 반환운동에
불교계 “성급 이전 반대”
이들이 반환을 요구하는 불상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977호로, 공식 명칭은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이다. 청와대 관람객에게 나눠주는 탐방 지도엔 ‘미남불’로 표시돼 있다.
9세기 통일신라 시대에 제작된 미남불은 일제 강점기 주권 강탈의 고초를 톡톡히 겪었다. 본래 자리는 경주 도지동 이거사 터로 추정되지만, 미남불이 이곳을 떠난 게 언제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조선총독부 조사서(1939) 등에 따르면, 1912년 11월 초대 조선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경주를 방문했을 때 이미 당시 경주금융조합 이사였던 일본인 고다이라 료조 집에 있었다. 어느 시점엔가 불상이 무단 방출돼 개인 집 정원 장식물이 돼 있었던 것이다.
조사서엔 데라우치 총독이 그 석불을 ‘숙시(熟視)’했다고 기록돼 있다. 눈여겨 자세히 봤다는 것이다. 총독이 미남불을 마음에 들어한다고 해석한 고다이라 료조는 이듬해인 1913년 서울 남산 총독관저(왜성대)로 불상을 보낸다. 총독의 환심을 사기 위해 뇌물로 상납한 셈이다. 이후 1939년 총독 관저가 현 청와대 자리로 이전하면서 불상도 함께 옮겨졌다.
미남불이란 별칭은 석굴암 본존불을 닮은 잘생긴 외모 덕에 붙여졌다. 1934년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관련 기사에서도 ‘미남석불’로 소개됐다.
미남불은 청와대 경내에 있는 유일한 국가지정문화재지만, 문화재적 가치보다는 해프닝 거리로 여러 차례 화제가 됐다. 기독교 신자인 김영삼·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에서 이 불상을 치워버렸다, 훼손했다 등의 유언비어가 돌았던 게 대표적인 사례다. 김영삼 정부에선 1994년과 1996년 두 차례, 출입기자단과 조계종 대표들에게 불상을 공개해 무사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왜 특정 종교 상징물이 청와대에 있냐며 타 종교에서 문제 제기를 한 적도 있다. 청와대 개방 이틀째인 지난 11일에도 한 50대 여성이 “난 하나님 아들”이라고 외치며 미남불 앞에 놓인 불전함을 부수고 난동을 부리는 사고가 일어났다.
경주 시민단체들이 불상 경주 반환을 펼치기 시작한 건 2017년부터다. 2019년엔 경주시·경주시의회와 공동으로 청와대·국회·문체부·행안부·문화재청 등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이들은 새 정부 출범과 청와대 개방을 계기로 반환 운동을 재개했다. 이번 청원서 전달에는 경주문화원과 경주예총, 경주상공회의소, 경주문인협회, 경주YMCA 등 24개 단체가 동참했다.
미남불에 대한 불교계의 입장은 경주 현지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조계종 임융창 홍보팀장은 25일 “청와대 석조여래좌상의 원자리를 명확히 파악하기 전까지 성급하게 이전하기 보다는 현자리에서 신앙심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불교문화재연구소장 제정 스님은 반환을 주장하는 목소리에 대해 “지역 이기주의”라고 못박았다. “그런 논리라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유물들을 모두 부여·김해 등으로 옮겨야 한다는 말이냐”면서다.
청와대가 개방되기 전까지 미남불은 실물을 본 사람이 거의 없는 베일 속 문화재였다. 경주문화재제자리찾기 시민운동본부의 박임관 운영위원장도 25일 청와대를 관람하며 미남불을 처음 봤다. 박 운영위원장은 “미남불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자비로운 모습이더라”며 “이렇게 아무도 찾지 않는 외진 데 갖다뒀다는 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미남불은 청와대 관저 뒤쪽 산책로에 자리잡고 있다. 사저 옆 연못을 지나 가파른 계단 길로 10분 정도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미남불의 시선을 따라 앞을 바라보니 남산 서울타워를 중심으로 서울 도심이 한눈에 들어왔다. 해방의 감격과 동족상잔의 아픔,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궈낸 서울의 다이나믹한 발전사를 묵묵히 지켜봤을 미남불의 타향살이 100여 년. 이 역시 역사의 한 자락일까, 아니면 청산해야 할 일제 잔재이자 적패일까. 경주 시민과 불교계뿐 아니라 역사·문화계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숙고를 시작할 일이다.
이지영 / 한국 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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