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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예술로 승화된 아픈 기억들

내가 영화 ‘사코와 반제티’를 처음 감상한 것은 50년 가까이 전인 일본 유학시절이었다. 오랜 옛날 일인데도, 영화의 장면들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당시 새내기 극작가였던 내게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준 모양이다.
 
‘사코와 반제티’는 100여년 전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가난한 이민자를 희생양으로 삼은 ‘마녀재판’이며 ‘사법살인’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엄청난 국제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었다. 특히 이민자들에게는 이야기하는 바가 큰 영화다. 사건을 간추리면 이렇다.
 
1920년 4월 매사추세츠 보스턴 근교의 한 구두 공장에서 경리담당 직원과 경비원이 총에 맞아 죽고, 현금 1만6000달러가 털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얼마 뒤 이탈리아 이민자인 니콜라 사코와 바르톨로메오 반제티가 용의자로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사코는 구두수선공이었고, 반제티는 생선장수로 힘겹게 생계를 꾸려가는 가난한 이민자였다.
 
경찰은 확실한 물적 증거가 없음에도 두 사람을 범인으로 몰고 갔다. 이를 위해 두 사람이 이탈리아에서 온 이민자이고 1차 세계대전 참전을 거부한 무정부주의자라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당시 미국 사회는 제1차 대전이 끝난 후 심각한 물가상승과 빈부격차, 과격해진 노사분규, 스페인 독감의 유행으로 민심이 극도로 흉흉해진 상태였다. 이런 와중에 무정부주의자들의 폭탄테러가 일어나자 정부로서는 희생양을 필요로 했고 여기에 무고한 사코와 반제티가 걸려든 것이었다. 따라서 이 재판은 ‘사상재판’의 성격을 띠며 국제적 관심을 모았다. 두 사람은 재판 내내 결백을 주장했고 증인도 있었고 제3자가 범행을 자백하기도 했으나 이들에게 공정한 재판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1921년 7월14일 두 사람에게 사형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자 미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편견과 적개심에 근거한 불공정한 재판에 분노하는 항의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파리에서는 미국 대사의 집이 파괴되고 구명운동을 벌이던 시위대에 폭탄이 터져 20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을 정도였다.
 
버트런드 러셀, 아인슈타인, 시인 아나톨 프랑스, 마리 퀴리, 이사도라 덩컨 등 세계 지성인들도 ‘최악의 사법살인’이라고 항의하며 구명운동에 나섰다.
 
그러자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사형 집행을 연기하고 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하지만 위원회가 내린 결론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1927년 8월23일 두 사람은 전기의자에 앉아 죽음을 맞았다. 두 사람은 처형 직전 마지막으로 제공된 스프와 고기, 토스트, 차 등으로 최후의 만찬을 즐기고 당당하게 죽었다. 처형 당시 사코는 33세, 반제티는 36세였다. 사형집행으로 엄청난 항의가 뒤따라 파리, 런던 등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두 사람이 사형 당한 지  30여년이나 지난 1959년 진짜 범인이 나타나자 그제야 진실이 밝혀지고 이들에게 사면이 제안됐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뒤인 1977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사코와 반제티의 무죄를 확인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억울한 누명을 벗고 명예를 회복하는데 50년이나 걸린 것이다.
 
4·29 30주년을 맞으며 미술, 문학 등의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이민자와 디아스포라에 대해 공부하면서 이 사건과 영화 장면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편견과 의혹이 가져온 폭력이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치유의 지혜를 공유하기 위해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사코와 반제티 두 사람은 그림과 노래로도 명예가 회복됐다. 미국화가 벤 샨이 그린 ‘사코와 반제티의 수난’ 시리즈 23점 등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우리가 겪은 4·29 아픔도 예술작품으로 승화되어 오래도록 남을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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