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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미술계 ‘여풍’과 어머니 마음

‘베네치아 여인천하.’ 올해 베네치아비엔날레 소식을 알리는 한 신문 기사의 제목이다. 세계 최대 미술축제 중의 하나인 베네치아비엔날레 127년 역사상 가장 거센 여풍(女風)이 불어닥쳤다는 소식이다. 1895년 비엔날레 창설 이래 가장 극적인 성비(性比) 역전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결코 호들갑이 아니다. 지난달 23일 공식 개막한 본 전시 초청 참여 작가 213명 중 188명이 여성으로 약 90%를 차지했다. 최고상 역시 모두 여성 작가에게 돌아갔다. 본 전시 황금사자상 수상자는 미국 조각가 시몬 레이(55)였고, 국가대표 대항전 성격의 황금사자상은 영국관의 작가 소냐 보이스(60)가 차지했다. 역대 영국관 첫 흑인 여성 작가다.
 
지난해 가을 ‘루브르박물관 228년 역사상 첫 여성 관장 탄생’이란 기사를 읽는 순간, 드디어 여성들이 미술계의 정점을 찍기 시작했구나라는 실감이 들었는데, 이번 베네치아의 소식은 미술계에서 ‘여성’이라는 키워드가 명실상부 주류로 떠올랐음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기나긴 세월 완고하게 버티고 있던 남성 중심 가부장제의 벽을 통쾌하게 깨부순 것이다. 일그러진 사회제도 때문에 그동안 억눌려 있던 여성들의 재능이 화산 폭발하듯 터져 나온 것이다.
 
바야흐로,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대세다. 특히 문화, 예술 쪽에서 그렇다. 이미 그렇게 되고 있고, 앞으로는 더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세계 미술계의 중심 화두는 여성미술이었다. 세계 여러 곳의 주요 미술관에서 대규모의 여성미술 전시회가 열릴 예정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열리지 못한 것이 큰 유감이다.
 
한국의 미술계에서도 젊은 여성작가들이 도약하여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2019년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보 4명 모두가 여성작가였고,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공식 참여한 한국 작가들도 전원 여성이었다. 서울, 부산, 대구 시립미술관을 이끄는 수장도 모두 여성이 임명돼 눈길을 끌었다. ‘미술계 우먼파워가 경매, 화랑, 화단을 장악했다’는 평가는 전혀 낯설지 않다.
 
우리 미주 한인 문화예술계에서도 여성들의 활동이 압도적이다. 작품의 질에 대해서는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일이지만, 숫자적으로는 문학, 미술, 음악 등 모든 분야에서 여성작가가 월등하게 많다.
 
“여성이 완벽한 존재는 아니지만 남성에 비해서는 ‘반박할 여지없이’ 우수한 존재다. 현대사회의 거의 모든 문제는 권좌를 지키는 데 몰두해 온 노쇠한 남성 정치가들이 불러일으킨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리더십 관련 강연에서 주장한 말씀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말에 동의한다.
 
내가 여성미술가들을 믿고 희망을 거는 까닭은, 어머니의 마음이 예술의 근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케테 콜비츠의 작품에 담겨 있는 어머니의 사랑이 주는 짙은 감동은 여성이 아니면 도달할 수 없는 세계다. 콜비츠는 아들과 손자를 전장에서 잃었다. 그러므로 그이의 전쟁 반대는 그저 관념적인 구호가 아닌 것이다.
 
여성 미술의 도약을 주목하는 것도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모든 예술 뒤에 있는 어머니의 그림자를 읽고, 냄새를 맡는 일도 소중할 것이다.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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