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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사랑은 사랑을 낳고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목표를 세우고  
장애물을 넘어  
지금에 이르렀다”
 
코로나로 인해 온 세상이 단절된 채로 2년을 살았다. 가족 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못하니 한가한 날에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흘러가 만나는 사람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국어 선생님이다. 유난히 곱슬거리던 머리를 가지런히 빗고 두껍고 무거운 국어사전을 들고 다니던 선생님이셨다. 허스키한 목소리로 역량을 다해 수업을 준비해 가르치던 모습이 여고 시절의 그리움과 함께 밀려온다. 열정적으로 우리를 지도하셨던 선생님의 많은 가르침 중에는 일기 쓰기도 있었다. 그것은 오늘날까지 나의 일기 쓰는 습관이 되었다.  
 
선생님 같은 훌륭한 분을 만난 것은 나의 삶에서 행운이며 축복이다. 벌써 53년이 흘렀다. 1학년 여름 방학 때 감로암에서 보내 주신 편지를 나는 아직도 가지고 있다. 빛바랜 그 답장을 여고 시절의 추억과 함께 일기장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선생님은 나에게 건강한 몸으로 학업에 열중하라고 단정한 글씨체로 정성 들여 답을 해 주셨다. 개학이 되면 더욱 실력 있는 선생님으로 태어날 것을 기대하라고 써 주셨다.  
 
그렇다. 선생님은 언제나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수업 준비하느라고 늦게 퇴근하는 선생님을 학교 도서관이 닫히고 교정문을 나서기 전에 여러 번 만난 적이 있었기에 선생님의 흥미진진한 수업을 어서 받고 싶었다.  
 
선생님은 방황하는 나에게 인생의 의미를 깨닫도록 이끌어 주었다. 나의 미래를 설계하여 교사의 꿈을 이루도록 희망을 주며 답답한 현실의 청량제 역할을 해 주셨다. 아버지가 고등학교 3학년 봄에 갑자기 돌아가신 후, 진로를 정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신 분이 선생님이시다.  
 
마침내 바라던 대학에 입학했다. 그때 담임 선생님이 아니었지만 내가 가정교사로 일할 수 있도록 소개해 주셔서 대학 졸업 때까지 학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나의 어려운 가정 형편을 속속들이 잘 아는 분이셨기에 어떤 곤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도록 힘써 격려하고 배려해 주었다. 한국에서 20여년간 교사 생활을 끝내고 여동생 초청으로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떠나기 전날, 어머니와 함께 선생님을 찾아뵙고 돌아서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미국 가서도 꼭 연락하리라고 다짐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6년이나 지났다. 그때 선생님보다 훨씬 나이가 든 나는 지금도 스승의 날이면 어김없이 카드와 마음의 선물을 보내드린다.  
 
선생님은 여학생 시절에 지혜와 지식과 경험을 나누어 주신 스승이었고,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까지 연마하신 해박한 지식을 전수해 주는 스승이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미국 공립 고등학교에서 한국어 교사로 재직할 때는 배우기 쉽고 유용한 문법책도 보내 주셔서, 제2 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또한 주말 한국어 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한국계 미국인 학생을 잘 지도하도록 나의 질문에 적절한 답을 주셨다. 미국에 이민 와서 그동안 잊혔던 한국 문법과 바뀐 맞춤법도 선생님께 배웠다.  
 
선생님은 이제 미수를 넘기셨는데도 감동받은 글과 노년의 삶을 위한 은빛 영상을 이메일과 카톡으로 보내 주신다. 은퇴 후에도 목적을 가진 삶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해 주기도 한다. 지금까지 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선생님은 여고 시절에 무엇보다도 야망을 갖고 주어진 삶에 도전해 보라고 강조하셨다. 그 가르침으로 흔들림 없는 목표를 세우고 장애물을 넘어 지금에 이르렀다.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지혜를 나의 제자에게 흘려보내는 것도 내가 해야 할 몫임을 깨닫게 해 주셨다.  
 
나는 매일 새벽 묵상의 시간에 스승과 제자들의 얼굴을 생각하곤 한다. 먼 훗날 누군가도 옛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이 얼굴을 떠올려줄까. 사랑이 사랑을 낳듯이 좋은 스승이 좋은 스승을 낳는다고 믿고 싶다.  
 
오늘은 바람이 몹시 분다. 여고 시절 교정에서 흔들리던 샛노란 은행 이파리에 선생님 얼굴을 그려본다. 오랜만에 진심으로 뜨거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손 편지를 써서 보내드려야지.

이현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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