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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위기의 나이

열쇠를 돌리는데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문득 등을 끄지 않은 채 차에서 내린 간밤의 기억이/ 몰려온다 낭패, 눈꺼풀도 내리지 않고/ (…)어저께까지도 명품이라 믿었는데/ 눈 한 번 들었다 깜박해버린 사이/ 어떤 것에 취해 이렇게 떠밀려온/ 두드려도 가없는 무슨 소리만 내보내고 있는// 중년을 일으키려, 정비기사가 달려온다/ 또 하나의 몸/ 이 부끄러운 듯 마중하러 간다
 
- 손진은 시인의 ‘중년’ 부분
 
어느 순간 나이를 의식하게 되는 때가 온다. 몸의 변화를 느끼게 되기도 하고 인지능력의 결함으로 황망함을 겪기도 하면서 뭔가 다르게 반응되는 신체를 경험하게 된다.  
 
언제부턴가 깜빡깜빡 기억력이 저하된다. 잘 둔다고 둔 물건 찾아내기가 힘들다. 전화기 어디에 두었는지 찾아 헤매는 일 많다. 이런 일들이 잦아지다 보면 위기감이 온다. 점점 사소한 것에도 주눅이 들고 자신감이 없어진다. 나이는 어쩔 수 없다고 미리 어깨가 처지기도 한다.  
 
한국에선 중년이란 ‘마흔 살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이르며, 때로 50대까지를 포함하는 경우가 있다’라고 정의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는 수정이 필요한 것 같다.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나이에 대한 구분도 분분하다.  
 
나라마다 기준이 다소 다르지만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40세에서 65세를 중년의 시기로 보고 있다. 이 시기를 중년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65세 이상이면 노년으로 분류해 국가 정책상 복지혜택이 주어지니 말이다.
 
요즘은 건강상태가 좋아지고 개인차가 커서 중년이라 지칭하는 시기에도 지능은 물론 신체적으로도 최고점에 달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 시기 삶의 만족도는 대체로 인생 전체에서 최저점을 찍는다는 것이 확인되기도 했다. 그래서 이혼율도 높다.

 
이 시기는 성격의 변화도 나타난다. 자신의 삶을 되짚어보며 점검해보게 되는 시기이기도 해서 인간관계의 폭이 줄어드는 경우도 있다. 무기력을 호소하기도 하고 우울증을 겪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의 저자 바버라 스트로치는 중년의 뇌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순발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복잡한 상황에서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 전체적인 큰 그림을 보고 이끌어가는 능력, 핵심파악 능력, 위기 대처능력은 가장 뛰어난 시기라고 했다. 퇴행하는 뇌가 아니라 유쾌한 뇌로 변할 수 있다는 고무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물론 평소에 생각과 행동을 긍정적인 쪽에 집중하는 생활습관이 필요하겠다.
 
나이가 다소의 순발력을 떨어뜨리기는 하겠지만, 몸의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이때를 위기가 아닌 각성의 단계로 삼는다면 희망적이다. 몸과 정신의 트레이닝을 게을리 하지만 않는다면 중년은 충분히 성장하는 황금의 시기다.
 
중년은 심리적 위기감과 열패감이 생기기는 하지만 아직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노년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분발한다면 향기 짙은 꽃을 피우기에 충분한 시간이기도 하다.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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