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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맛과 멋] 태양의 정기(精氣)를 보내주는 여자

지난 월요일, 1박 2일로 아미시(Amish) 마을 랑카스터를 다녀왔다. 오랜 지기 마리아씨의 선물이다. 나는 아미시가 기계문명을 거부하고 옛 농사 방식으로 자급자족하며 사는 집단이라고만 생각했지 그들이 재세례파 계통의 개신교 종파라는 건 이번에 알았다. 창시자는 스위스의 종교개혁자 야곱 아망으로, 17세기 이후 탄압을 피해 유럽에서 이주한 스위스-독일계 이민자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우리가 간 펜실베이니아주 아미시 카운티의 랑카스터는 아미시들의 중심지로, 인구 6만여 명의 펜주에서 8번째로 큰 도시이다. 한때 주 수도였던 타운답게 다운타운은 펜광장(Penn Squ-are)를 중심으로 아미시 상품 판매소인 센트럴 마켓(Central Market)을 비롯해 메리어트 호텔, 음식점, 상가들이 포진해 있고, 음악학교도 눈에 들어온다. 대중적인 메리어트 호텔이 이렇게 클래식하고 육중한 건물인 것은 처음이다. 그 외에도 고색창연한 묵직한 빌딩들이 적지 않고, 상점들도 단정하다. 특이한 점은 대개의 상점이 큰 도자기 항아리에 색색의 꽃을 장식해 놓았다. 보는 사람의 눈과 마음이 저절로 즐거워진다.  
 
낯선 도시들을 가보면 생동감이 넘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고스트 타운처럼 죽어가는 도시도 있고, 프라하처럼 클래식하고 파스텔 톤의 색조가 멋스럽던 도시가 마치 미국의 어느 소도시에 온 것처럼 온갖 명품 대형가게들로 탈바꿈해 낯설어지기도 한다. 랑카스터는 청결함과 관리 잘 된 도시의 모습이 참으로 상큼한 인상을 주었다. 다운타운뿐만 아니라 타운 곳곳을 다녀도 모든 빌딩과 가옥들이 매우 정돈되고 청결했으며, 잘 가꾸어져 있다.  
 
마리아씨가 랑카스터 인근을 이 골목 저 골목 헤집고 다닌 덕분에 목축업이 주요 생업인 아미시들의 생활을 그나마 살펴볼 수 있었다. 소 목장도 있지만 말 목장이 많은 건 의외였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소똥, 말똥 냄새가 풍기는 게 마치 한국 우리네 시골을 지날 때마다 나던 거름 냄새와 흡사해 익숙했다. 정원의 화초에도 거름을 주어 냄새가 진동하는 아미시 집에는 높은 빨랫줄이 있고, 거기에 어두운색의 옷들이 집게에 집혀 널려 있었다. 아직도 거리엔 마차가 다니고 마차 판매점도 있지만, 대부분의 집에 자동차가 있는 걸 보면, 그네들에게도 21세기 폭탄적인 물질문명과 기계문명은 더는 거부만 할 수 없었나 보다.  
 
모처럼의 봄맞이 외출로 내가 몰랐던 아미시들의 절제와 근면의 삶을 엿볼 수 있었던 일은 좋은 학습이었다. 그들의 레트로 적 삶을 보면서 지구의 환경 문제를 떠올린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첨단기술이나 기계 사용을 줄이고, 이들처럼 자연 비료로 농작물을 재배한다면 지구가 훨씬 건강해지지 않을까? 지구만 건강해질 수 있다면 까짓 거름 냄새쯤도 얼마든 견딜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 동안 함께 하면서 마리아씨를 더 많이 알게 된 일도 기쁘다. 바닷가에 사는 마리아씨는 매일 새벽 해가 뜨기만 하면 즉시, 시간에 구애하지 않고 그 광경을 찍어 카톡을 보낸다. 왜 그렇게 보내느냐고 물었더니 떠오르는 태양의 정기를 보내주고 싶어서란다. 반론의 여지가 없다. 뉴욕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가정’이라 우러르는 모범적 가정을 이룬 어머니이나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험을 즐기는 이 시대 여인이기도 하다. 내가 딸들에게 늘 하는 말도 인생은 도전이고 모험이라는 것이다. 나는 도전하는 삶, 정지하지 않고 매일 진화해가는 삶을 지향한다. 그렇게 사는 벗이 주변에 있다는 건 특별한 축복이라 여겨진다.
 
여정이 내겐 좀 힘들었지만, 그래도 마리아씨든, 그 누구든, 나를 부르면 나는 곧 떠날 준비가 늘 되어 있다. 왜? 살아있는 동안 이 세상을 마음껏 누려야 하니까.

이영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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