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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묵언 습관

“존재감을 좀 드러내야지. 왜 그렇게 말이 없어요.”
 
지인이 나에게 말했다. 들어낼 존재감도 없거니와 그냥 입 벌리기가 싫다. 그런데 왜 존재감도 없는 내가 예전엔 그리 떠들었을까?  
 
언젠가부터 입 벌리기 귀찮아졌다. 게다가 묵언 수행까지 하려고 폼 잡고 있다. 묵언 수행이라기보다는 묵언 준비, 묵언 연습, 묵언 번뇌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낫겠다. 팬더믹이 끝나 사람들과 만나기 전에 묵언 습관을 들이고 싶어서다.  
 
오래전, 뉴욕시에서 3시간가량 알바니 가는 곳에서 며칠 묵고 왔던 원 달마센터가 생각났다. 그곳 규칙에 따라 첫날부터 ‘노블 사일런스(noble silence)’를 시작했다. 입을 다물자 눈이 활짝 트이고 멀리 녹음이 우거진 숲이 가까이 와 있었다. 귀가 열리며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오케스트라의 다양한 악기 연주처럼 들렸다.  
 


유튜브에 ‘묵언 수행’을 찾았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을 줄이고 귀를 열어 상대방 이야기에 경청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일단 입을 다무는 습관부터 들여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몇 년 전부터 말이 줄긴 줄었다. 줄이려고 했다기보다 말을 많이 하면 목이 아프다가 감기에 걸려 벌을 받은 듯 며칠 앓았기 때문이다. 말수는 조금 줄었지만, 귀는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남자 대학 동기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누군지 기억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목소리는 금방 기억났다. 너무 반가워 나의 긴 수다가 펼쳐지려는 순간  
 
“우리 만나서 얘기하면 안 될까?”  
 
“왜? 지금 전화로 조금만 더 얘기하고 싶은데요.”
 
“좀 그래서.”  
 
마음 편히 오랜 시간 이야기하고 싶었다. 우리 집으로 다음날 오라고 했다. 부인과 함께 나타났다. 인생에서 너무도 짧은 만남이었건만 서로의 형편을 다 알기라도 하는 듯 반가웠다.
 
복학생이라 나보다 서너 살은 많았지만,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전화 통화가 불가능했단다. 내가 소리높여 이야기해도 듣지 못했는지 부인이 통역하듯 그에게 속삭였다. 몸이 좋지 않아 술도 못 마신단다. 이가 성치 않아 고기 씹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기억이 희미해져 친구들 이름이 가물가물 생각나지 않아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았다. 만나기 전 기대감이 슬금슬금 빠지면서 맥이 풀렸다. 서글펐다.  
 
그 대학 동기가 생각날 때마다 수다도 건강할 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변명하며 계속 그냥 수다 떨까? 지난 2년 남짓 팬데믹이 우리 일상에 가져다준 삶의 변화로 사람과의 대면과 대화가 사라지는 사회적 몽환 상태에서 굳이 묵언이 필요할까? 생각하다가 그래도 그건 아니지. 묵언 수행까지는 아니더라도 묵언 습관은 들이자며 나 자신을 다독인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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