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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튤립에 담긴 사랑

"잘 길러보세요."

 
친구가 튤립을 가지고 왔다. 내가 화초 기르는 것을 좋아하니 사 온 것 같다. 섬세하게 챙겨주는 친구다. 그녀를 만나고 나면 보슬비를 맞은 상추처럼 마음이 싱싱해진다. 좋은 것을 나누는 마음 고운 친구다.
 
유리 화병 흙 속에 뿌리를 내린 튤립 자태가 함초롬하다. 어디에 놓을까 한참을 생각하다 현관문 옆 하얀 벤치 위로 정했다.
 
친구와 나는 몇 년 전 각자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원에 한 주간 다녀왔다. 그곳에서 생각을 정리해보길 원했다. 말 한마디에 담긴 무게감과 말수를 줄여도 오해하지 않는 그런 사이가 진실한 친구인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말과 소음의 차이도 절실하게 알게 되었다. 생각 없이 불쑥 하는 한마디의 대화가 삶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말은 ‘마음의 소리’라고 하지 않는가.  


 
‘팡세’의 저자 블레즈 파스칼은 “인간의 존엄성은 사유의 능력에 기인한다”고 했다. 항상 생각을 올바르게 하여 본래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아야 함을 생각했다. 이상적 삶과 현재의 삶이 얼마나 다른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지혜는 인간관계에 큰 영향을 준다. 나에게만 집중하던 눈이 남도 보게 되고 나만 아프게 느껴지던 가슴속에 남의 아픔이 느껴져 모두가 귀하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이렇게 열린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간다면 삶이 아름답지 않을 수가 없으리라.
 
우리는 기도원을 다녀온 후 더욱 진솔한 친구로 지낸다. 서로 지켜야 할 예의를 갖추니 40년 세월 동안에 변함이 없다. 가까이에 살고 있으니 맛난 음식 만들면 나눠 먹고 집안의 좋은 일 어려운 일도 나누며 친자매 같은 사랑을 나눈다. 형제자매라도 먼 곳에 살면 자주 보기 힘든데 가까이에 살아 고맙다.
 
애지중지 키운 지 며칠 만에 튤립이 봉오리를 피워 올렸다. 생명의 신비를 보니 가슴이 뛴다. 종 모양의 꽃은 수줍은 듯 파스텔 분홍색을 띄웠다. 꽃이 기특하여 현관문을 열고 내다보기도 한다. 들락날락하며 활짝 웃는 튤립과 눈인사도 나눈다. 봄기운이 교향곡처럼 울려 퍼지는 날에 마지막 한송이까지 귀족처럼 우아하게 피어올랐다.
 
튤립은 꽃잎이 다 떨어진 뒤에도 6개의 수술과 초록색을 띤 암술 2개가 남는다. 한동안 오뚝하게 서 있어 꽃이 져도 진 것 같지 않은 여운을 준다. 짙은 연두색의 넓은 잎사귀도 그 자리에 남아 떠나지 않으니 사랑을 떠올려도 성급하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냥 볼 때는 ‘예쁜 꽃’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색깔마다 꽃말이 다 달랐다. 흰색, 분홍색, 자주색, 노란색, 혼합된 것 등 색깔이 다양하다. 분홍꽃이 이야기꾼이 되어 우정을 나누라고 ‘사랑의 시작’이라는 꽃말로 말한다. 친구가 의미를 생각하고 꽃을 고른 것일까.
 
요즘 나도 꽃을 선물할 기회가 되면 내 눈이 자주 튤립으로 향한다. 올 시월에는 잊지 말고 튤립 구근을 사서 심어야겠다. 유리병 속에 넣고 물을 줄 때마다 우리의 삶도 예쁜 꽃처럼 피어나길 소원하며.

엄영아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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