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의 인물 탐구: 서른여덟 해 된 병자
예닮장로교회 윤우식 담임목사
혼자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병자가 자신을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는 상태로 연못가에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어쩌면 그는 자신의 병이 가장 중하기 때문에 연못의 물이 동할 때에 사람들이 자신을 제일 먼저 들어 갈 수 있도록 배려해 줄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닐까요? 오늘 날 사람들은 각자의 문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고,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맞습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문제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누군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그 문제는 별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구에게든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은 그 사람에게 가장 클 수밖에 없습니다. 38년 된 병자, 병을 앓은 지 38년이 되었기 때문에 심각한 것이 아니라 그 병으로 인해서 그가 가장 어렵게 생각하는 상황이 중요한 겁니다. 그가 병을 앓은 지 3개월이 되었다고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병으로 고생하고, 더욱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단 하나의 희망마저도 얻을 수 없는 상황인 병자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한복음 5장6절. ‘예수께서 ... ‘보시고’에서 ‘보다’는 ‘호라오’로 ‘찾아내다, 주목하다’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병자를 우연하게 보신 것이 아닙니다. 그를 주목해 보셨습니다. 오늘 날 우리는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 어떤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혹시 영혼의 문제를 깨달았다고 해도, 그것을 해결할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쩌면 38년 된 병자와 같이 우리 스스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문제를 알고, 분석하지만 해결책은 찾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런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호라오’, 찾아 내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그 분께서 우리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병이 얼마나 중한지를 아십니다. 얼마나 오래 된지도 아십니다. 말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아십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얼마나 아파하며, 힘들어 하는지도 아십니다. 병자가 자신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소망을 가지고 바라본 것처럼 우리의 인생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간 병자가 경험한 은혜를 목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문제든, 어떤 상황이든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 앞에 오면 해결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시는 주님께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회칼럼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