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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아직도 남아 있는 4·29의 상흔

 2001년 9월 11일, 뉴욕 시민들은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다.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이 비행기 테러 공격으로 무너져 내리는 장면이었다. 건물 붕괴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가 2996명이었고 부상자도 약 2만5000명에 달했다.  
 
이 같은 참극이 발생하면서 많은 정신과 의사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를 우려했었다.  
 
외상성 사건(trauma) 이후에 반복적으로 침습하는 고통스러운 기억, 그와 관련된 악몽, 똑같은 사건이 재연되는 것처럼 느껴지고 행동하게 되는 해리성 반응( Flash back), 더 이상 행복·만족·사랑을 경험할 수 없는 부정적인 기분 등이 PTSD의 주요 증상이다.  
 
테러 이후 정신과 의사들은 뉴욕 초등학교들을 찾아갔다. 종이와 크레용을 주고서 아이들에게 그 당시의 장면을 기억나는 대로 그려 보라고 했다. 이는 아이들이 당시의 기억을 ‘회피’하는 대신에 그 힘들었던 사건 속으로 들어가 재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건물이 무너질 당시의 무섭고 공포스러웠던 감정들을 꾹 눌러 감추는 대신에 아이들이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교사와 사랑하는 친구들, 전문의 등의 격려 속에서 그 끔찍했던 장면들을 그리며 자신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30년 전 4월 29일을 우리 한인들은 잊지 못한다. 사랑하는 가족, 친지, 친구들이 땀흘려 마련한 생활의 터전인 업소와 건물들이 아무 이유 없이 폭도들에 의해 불에 타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폭도들로부터 주민들을 지켜주어야 할 경찰은 방관했다. 파괴와 방화가 일어나고 도난이 자행되는 현장에 경찰은 없었다. 경찰은 폭도들의 파괴 행위가 없는 백인 지역을 예방 차원에서 지키고 있었다.  
 
당시 총성이 요란했던 LA다운타운에서 신발 소매업을 했던 필자의 시동생은 30대의 가장이었다. 준비한 총을 들고 어렵게 마련한 가게의 지붕으로 올라가 방화범으로부터 업소를 지켜야만 했다. 경찰이 보호해주지 않는 무법천지의 상황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의 재산을 지키려는 자구책이었다.  
 
많은 한인들이 자신의 업소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 이러한 행동을 주류언론은 한흑간의 갈등으로 왜곡해 보도했다. 4·29폭동 이후 많은 한인들이 LA에 환멸을 느껴 타주로 이주하기도 했다. 한인들은 혈압과 맥박이 심하게 오르고, 얼굴에 진땀이 흐르며, 소화불량이 심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증상을 경험했다. 작은 소리에도 기겁을 하며 놀라 공포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또한 자신이 자기 몸에서 떠나 천장에서 내려다 보는 것 같은 해리 현상을 경험한 한인도 있었다. 자신이 항상 있던 곳이 마치 다른 사람의 집 같이 느껴지는 비현실감을 경험하기도 했다.  
 
가게가 불타고 있을 때의 뜨거운 열기가 마치 현재에 다시 일어나는 것처럼 몸에 뜨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즉 과거에 자신도 모르게 느꼈던 생리적, 감정적 반응이 그대로 다시 느껴지는 것이다.  
 
더 이상 자신이나 타인, 세상에 대한 믿음을 갖기 힘들기 때문에 ‘세상 아무도 믿을 수 없어’ ‘내가 바보야’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커져 공포, 경악, 화, 죄책감, 수치감을 느끼기도 한다. 간혹 공격적이 되어 가정폭력을 일으키거나 싸움을 한다.  
 
4·29폭동 30주년이 다가온다. 아직도 당시의 기억 때문에 PTSD를 겪는 환자들이 있다. 함께 모여서 자신들의 상처를 이야기 하거나, 연극으로 표현하거나, 그림이나 글로 나누는 것은 어떨까. 정신상담 전문가와의 개인 또는 집단 치료를 통해 당시의 기억을 극복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같은 항우울제도 크게 도움이 되니 전문의를 찾아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30년 전의 상처는 아직도 남아 있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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