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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손길이 닿은 작품

 잘 그린 그림 한 점이 있다. 좋은 그림이라 칭찬하면서도 그림의 값을 말할 때는 그다지 좋게 불러주지 않는다. 그림을 그린 작가의 표시가 없기 때문이다. 그림 자체의 훌륭한 점은 인정하지만 어떤 작가의 손길이 닿은 것인가에 따르는 값을 정할 수 없어서 그렇다. 그래서 작품 한구석에 조그맣게 올려진 서명이 중요한 가치를 갖게 된다. 때로는 유명인 사인만을 백지에 받아내는 일도 상당한 가치를 지니며 그 유명인을 바라보는 행위에도 큰 의미를 갖게 된다. 바라보는 그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손길이 닿았다는 뜻을 지니므로 큰 자부심으로 남는다. 서명이 없는 잘 그린 그림이 서명 있는 보통 그림보다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냥 잘 그린 그림은 많이 만들어질 수 있지만, 서명 있는 그림은 한정적이고 그 작가의 체취가 있어 누군지 알 수 없는 작가의 알 수 없는 체취보다 생명력 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많은 친구를 두고 있다. 아주 친한 친구도 있다. 친한 친구와는 남다른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 길을 걷다 방금 지나친 저 사람이 그 친한 친구보다 훌륭할 수 있다. 그러나 친한 친구는 될 수 없다. 그림에서의 서명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익히 알고 있는 체취가 없다. 함께 지내온 많은 시간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의 공감 세계를 다른 무엇도 대체할 수는 없다. 월등한 실력 뛰어난 능력 등이 두 사람 사이에 구축된 가치를 대신할 수는 없다. 이것이 귀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친구를 위하여 많은 것을 희생하기도 한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산업 발달 이전에는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나 도구 등을 몇몇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직접 손으로 만들었다. 내게 필요한 나에게 꼭 적합한 것을 만들어 나에게 전해지는 가내공업의 사회에서는 내 물건이 언제나 특별한 것이었다. 만든이가 나를 염두에 두고 이리저리 손질하여 만들어낸 나만을 위한 것이어서 나름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제작 기술이 발달하고 더 많은 사람을 위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나만을 위한 나에게 맞추어진 물건은 사라졌다. 내가 가진 책상이나 옆 사람이 가진 책상이나 똑같이 생겼고 특별한 의미도 없어지고 그에 따른 특별한 가치도 지니지 못하게 되었다. 나한테만 의미 있던 여러 가지들이 아무 때나 어디서든지 만들어지는 것으로 대체되기 시작하면서 생활의 안팎에서 아기자기하게 자리 잡던 소소한 이야기와 가치들이 없어져 버렸다. 사람들에게 섭섭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대체불가 자산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정확히 어떤 뜻을 가지며 비즈니스 세계에서의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특별한 과정으로 만들어져 “오직 당신에게만”과 같은 경로로 전달되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는 현상처럼 들린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그런 경향이 있음이다. 여기서도 볼 수 있고 저기서도 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고 어떤 사람의 “손길이 닿은 작품” 같은 그런 것을 좋아하는 우리들의 심리가 꼭 어느 장소 어느 시간 어느 사람의 손에 의하여 전해지는 그런 것을 굳이 찾아다니며 만나려 하고 있다. 친구에게 제일 친한 친구가 되고 싶고 나의 마음이 담긴 못생긴 그림이지만 선물하고 싶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야” 하며 울퉁불퉁 목각인형을 주고 싶어 한다. “손길이 닿은 작품”을 받고 싶고 “손길이 닿은 작품”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존재는 어떤 손길이 닿아 세상에 나왔는지 그 또한 알고 싶어지는 대체불가 자산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안성남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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