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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뒷모습에 담긴 세월의 흔적

‘여보 사랑해요’ ‘아버지 천국에서 만나요’ ‘천국에서 안식하소서’ 얼마 전 참석했던 장례식장은 고인을 추모하는 글귀가 담긴 꽃들로 가득했다. 그 꽃들 사이에 온화한 표정의 한 남자가 누워 있었다. 동료 목사의 아버지였다.
 
아버지를 잃은 동료 목사를 위로하기 위해 조문객으로 참석한 장례식이 영 어색했다. 목사이기에 조문객으로 장례식장을 찾기보다는 집례나 다른 순서를 맡을 때가 많았다.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예배를 인도하기에 장례식 내내 긴장하며 서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조문객으로 참석한 장례식의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두리번대던 눈길이 장례식장 전면에 붙어 있는 큼지막한 TV에 멈춰 섰다. 찬송가 악보도 보여주고, 고인이 살아계실 때의 행적이 담긴 슬라이드 쇼도 나오는 TV였다.  TV 화면은 집례자와 함께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뒷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맨 앞줄에 앉은 유가족이 울음을 애써 참느라 들썩대는 어깨의 흔들림이 TV 화면을 통해 나오고 있었다.  
 
유가족들 바로 뒷줄에 앉아 있는 조문객들의 뒷모습도 TV로 보였다. 그중에 한 중년 사내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흰머리가 듬성듬성 섞인 사내의 뒤통수가 이리저리로 움직였다. 그것도 내가 고개를 돌리는 대로 따라다녔다. ‘설마 저게 나겠어?’ 하면서 고개를 좌우로 돌리는데, 그 사내의 머리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내가 움직이는 대로 까딱거렸다.  
 


내 뒤통수를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인지 TV 화면에 비친 내 뒤통수가 낯설기만 했다. 저게 남들이 보는 내 뒷모습일 텐데 나만 못 보고 살아왔다는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TV 화면으로 보이는 흰머리가 듬성듬성 섞인 내 뒤통수에는 세월의 흔적이 담겨 있었다.  
 
가만 보니 내 머리만 하얀 것이 아니었다. 내 앞에 앉은 이의 머리도 하얗고, 그 옆에 있는 이의 머리는 가운데가 횅했다. 앞모습만 바라보느라 놓쳐버린 세월의 흔적이 오랜만에 만나는 뒷모습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담긴 것은 뒷모습만이 아닐 것이다. 내가 걸어왔던 길에도 그 흔적이 쌓여 있을 것이다. TV 화면을 통해 비치는 뒷모습을 보면서 앞만 보고 달려왔던 인생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날 사랑하는 가족들의 품을 떠나는 동료 목사의 아버지도 결국은 뒷모습만을 남기고 갔다. 아내에게는 자상한 남편이요, 아들들에게는 하늘 같은 아버지였다. 손주들에게는 한없이 따듯한 할아버지였고, 아름다운 믿음의 본을 보인 신앙인이었다. 그가 남긴 뒷모습이 멋지고, 그가 걸어왔던 길이 아름다웠던 만큼 떠나보내는 이의 마음이 더 아쉬웠을 것이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앞모습이 아니라 뒷모습이 남을 뿐이다. 그날 장례식장에서 만난 내 뒤통수를 보면서 이제는 뒷모습을 잘 관리할 때라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길을 걸어갈 때도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야 할 때다. 내가 밟고 지나온 길이 누군가에게는 따라가야 할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서 TV 화면에 비친 한 중년 사내의 뒤통수는 세월의 흔적을 잘 쌓으며 살라고 하면서 오늘도 하얗게 변해간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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