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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부활절, 무신론자의 십자가

우리 도시 야경의 십자가
가장 강력한 신앙의 상징

물리적으로는 비합리적 구조
건축적 상상의 십자가 추론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거짓말일 것이다.” 라디오에서 들은 어느 성직자의 단언이었다. 오래전 미국 유학 시절의 부활절 아침이었다. 2022년의 금요일이라는 달력 표기는 선명한 기독교 영향의 증명이다. 우리의 도시 풍경에도 기독교의 흔적은 충만하다. 석양이면 교회 첨탑의 십자가들이 빨갛게 떠오른다. 그런데 십자가들 아래 겨자씨만한 믿음도 없는 건축전공의 무신론자도 묻혀 살고 있을 것이다. 그가 십자가를 물리적 구조물로 해석하는 건 직업병일 수도 있겠다.
 
십자가라는 단어에는 형태가 선명하나 막상 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 모양이 아니고 ‘T’ 형태였다는 주장, 그냥 수직 막대기였다는 의견도 있다. 신약성서의 그리스어 ‘stauros’가 굳이 십자가 형태를 지칭하지 않기 때문이다. 로마의 형벌이니 라틴어가 중요할 텐데 ‘crux’ 역시 형태의 의미가 없다. 그런데 건축적 관점에서 이들의 공통 문제는 불안정 구조체라는 점이다.
 
일단 재료부터 살펴보자. 이 지방은 목재수급이 좋지 않은 건조기후대다. 성서에는 고급건물 시공 목재로 레바논 삼나무를 수입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고난 성화에 등장하는 깔끔한 목재는 사형장에 쓰기 아까운 사치재다. 더구나 사람의 하중을 버텨야 할 구조재면 한 사람의 운반 중량을 초과한다. 올리브나무라고 가정해서 20㎝ 각재로 개략 계산해도 200㎏을 넘나든다. 수평부재만 형장까지 지고 갔으리라는 짐작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십자가를 세우려면 기초를 확보해야 한다. 탁자 위의 젓가락이 그렇듯이 십자가를 맨땅 위에 세워 놓을 수는 없다. 고정하려면 땅을 파야 한다. 십자가는 하중상 가분수 구조체다. 무게중심이 높을수록 구조 깊이가 깊어져야 한다. 어림잡아 지상 노출 길이의 절반 정도는 지반에 묻어야 고정이 가능하겠다. 그 깊이면 사람이 들어갈 너비로 작업공간을 확보하며 파나가야 한다. 그런데 십자가가 세워졌다는 골고다는 바위 지형이다. 석회암이 무르다 해도 바위다. 물론 처형장의 상설 구덩이도 짐작할 수는 있으나 십자가형은 수백 명 단위로 이루어진 기록도 있다.
 


시공이 본격적 문제다. 못 박은 사실은 명시되어 있다. 합리적 순서는 일단 십자가를 눕혀놓고 못질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확보한 구덩이에 하단부를 넣고 십자가를 세운다. 이때 십자가를 임시 고정할 가설장치가 필요하다. 넓게 파야 했던 구덩이는 흙으로 메우려면 엄청나게 잘 다져야 하고 돌로 채우려면 필요량이 너무 많다. 수직부재가 이미 설치되어 있다고 가정해도 거기 수평부재를 걸어 연결하는 것은 어렵다. 두 부재는 확실한 고정, 구조역학 전문용어로 ‘모멘트컨넥션’을 이뤄야 하는데 고난도 기술이다. 더구나 매달린 사형수들은 고통으로 몸부림을 칠 테니 이 방법은 선택 가능성이 낮다.
 
십자가라는 구조물은 집행 이후 철거해야 한다. 십자가를 눕히려면 기초를 해체해야 하니 이때 기초는 연약해야 하는 모순에 빠진다. 십자가를 세워두고 사다리로 예수를 내리는 성화가 많다. 그러나 허공에서 못을 빼고 인체 무게를 부담하는 공정은 건축적으로는 난공사다. 역학·시공 지식보다 신앙·열정이 앞선 화가들은 물리적 현실을 초월하곤 했다. 그 신심에 따라 십자가는 길고 높아졌다.
 
건축적 상상력으로 처형자 입장에서 재구성하면 십자가 형태는 ‘+’보다 ‘x’가 훨씬 합리적이다. 우선 역학적 안정구조이므로 얇고 굽은 목재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별도의 기초·가설공사도 필요 없다. 문제는 지게처럼 뒤를 받치는 부재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수가 지고 간 것은 바로 이 부재가 아니었을까.
 
1968년에 예수 시대의 유태인 유골 무덤에서 대못 박힌 발뼈 조각이 발견되었다. 어느 쪽 발뼈인지 이견이 있으나 못이 복숭아뼈 뒤를 관통한 상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 비례도 모습처럼 다리를 벌리면 가능해지는 자세겠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치욕적 모습이다. 그러기에 처형장치로는 더 적합했을 것이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는 처형을 자원했다는데 ‘x’ 모양이었다면 이해가 쉽다.
 
그런데 왜 십자가는 ‘x’ 아닌 ‘+’ 모양으로 알려졌을까. 우선 기독교 전파로 부활의 상징이 필요했는데 그게 텅 빈 무덤이기는 어려웠겠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메시아가 갑옷의 전사가 아니고 무력하게 처형된 죄수였다는 걸 설명하는데 곤혹스러워하곤 했다. 그래서 그들은 덜 치욕적이고 상대적으로 우아한 ‘+’ 모양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십자가는 다만 고난의 표현이되 굳이 수모의 재현일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곧 부활절이다. 인간이 만든 가장 큰 십자가는 건물이다. 직사각형으로 시작된 대성당의 평면이 중세를 지나며 십자가 모양으로 변모해갔다. 부활이 없었다면 건축사도 죄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건축전공 무신론자 입장에서도 ‘x’가 아닌 ‘+’ 모양의 십자가가 다행스럽기는 하다. 도시 야경 곳곳에 빨간 ‘x’가 떠있다고 상상해보자. 섬뜩하지 않은가.

서현 /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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