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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사백 번째 이야기

이백 번째 이야기를 썼을 때까지만 해도 브루클린에 사는 생활고에 찌든 화가 부부의 애환을 썼다. 상처의 고름을 짜내듯 한자씩 뱉어냈다. 삼백 번째 이야기부터는 지난 과거의 어두운 삶에서 벗어나 서서히 평상심을 일궈가는  과정을 썼다.
 
2008년 6월부터 중앙일보 지면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왜 그리 힘들게 살던 기억이 떠오르든지! 어느 순간부터는 고달팠던 삶의 기억이 그다지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이따금 뒤틀며 올라올 적도 있지만, 힘든 기억을 다 뱉어내고 나니 상처가 치유된 듯 더는 생각나지 않았나 보다.  
 
글 쓰는 일은 내면을 열어젖혀 자신과 대면하고 치유하며 생각을 깨우치는 일이다.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응어리진 실타래를 끌어내어 풀고 어두운 과거를 청산해서인지 마음이 가벼워졌다. 더는 아파할 일이 없어져 서서히 변화가 일어났다. 아픔과 슬픔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워졌다.  
 
남편의 시선도 달라졌다.
 
“이 여사, 중앙일보에 글 쓴지 몇 년 됐지?”
 
“올 6월이 오면 벌써 14년이나 썼네?”
 
“질기네. 글이 좋고 나쁨을 떠나 사백 개 글을 시간에 맞춰 보냈다는 것만도 대단해. 마누라에게 한번 걸리면 끝장나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긴 했지만, 아무튼 질겨. 수없이 망할 듯 말 듯 하던 조선 518년의 끈질긴 전주 이씨 조상의 DNA를 받았기 때문일 거야.”  
 
“원래 내가 가늘고 길게 가는 것을 선호하잖아. 지면에 거창하게 많은 것을 쓰려고 하면 오래 쓸 수 없어. 맛있는 것 한꺼번에 다 먹지 않고 아껴 뒀다가 조금씩 먹듯이 쓰니까. 심오한 글은 쓸 줄도 모르고 그냥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수다를 쓰니까 지금까지 버텼지.
 
예전엔 소재가 떠오르지 않아 신문사에 제때 글을 보내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했어. 지금은 그 걱정도 없어졌어. 산책하다가 문득 소재가 떠오르기도 하고, 친구와 수다 떨다가도, 자다가도 탁 떠올라. 가만히 기다리며 소재가 문뜩 떠오르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잡으려고 조금만 신경 쓰면 되니까.  
 
솔직히 독자들에게는 미안해. 타성에 빠진 내 글이 지루할 수도 있잖아. 어떻게 개인사를 그렇게 까발릴 수 있냐는 말까지 지인들에게 여러 번 들었지만, 뭐 그런 소리 좀 들으면 어때. 내가 골방에서 광장으로 나간 듯 변화하고 좋아지는데. 글 쓰는 일이 나에게는 좋거든. 인간은 무척이나 이기적인가 봐.”
 
지난 14년 동안 내가 글을 쓰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의 모습은 어떨까? 이따금 궁금하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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