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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소통 부재의 시대

 사회나 단체에서 조직과 구성원 간의 접촉(contact), 연결(connection), 소통(communication)은 중요하다. 이른바 ‘3C’다. 기계를 잘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만큼 중요하다. 신문과 방송에도 자주 이 말들을 쓴다. 정치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똑같이 쓰지만 이 단어들의 뜻은 각각 자신이 처한 입장과 지향점에 따라 전혀 판이하게 이용되고 해석된다.  
 
예를 들어 극좌나 극우 세력들의 3C는 근본이 다르다. 자기 편끼리의  연결, 접촉, 소통은 모두 아전인수 식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물론 각자의 입장에 따라 뜨거운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끼리끼리 접촉과 연결은 다소 가능하더라도 상호간의 진정한 ‘소통’까지는 힘든 여정이 된다. 아니, 불가하다는 표현이 맞다. 왜냐하면, 그 기저(基底)에 인간에 대한 예의와 세상사 불문의 상식적 범주, 합리적 사고 등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안에 따라 또는 필요에 따라 ‘소통하는 척’만 할 따름이다.  
 
남녀간 사랑의 접촉, 연결, 소통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우리가 평소 생각하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해석된다.  
 
지금 우리는 불과 몇 초 만에 서로가 ‘연결’되고 ‘접촉’되는 이전에는 상당도 하지 못했던 시대에 살고 있다. 초고속 인터넷망의 발달로 지구 반대편 사람과도 쉽게 연결될 수 있다. 하지만 연결되어 있다고 믿을 뿐 접촉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혹은 휴대폰으로 쉼 없이 문자와 메시지를 주고 받는 접촉을 소통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그러다 보니 금세기의 우리는 어쩌다 바로 코앞에서 식구들끼리 함께 바라보는 것조차도 불편하게 여기는 황당한 문화 속에 살고 있다. 눈을 뜨고 있지만 보이지 않고 볼 수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아프리카 부시맨들은 덤불 속에서 나오는 상대방의 모습이 보이면 “네가 보여!”라고 소리친다고 한다. 그러면 덤불에서 나오던 사람도 “나도 네가 보여!” 화답한다고 한다. 이렇듯 서로의 존재를 그대로 확인하는 이 꾸밈 없는 연결이 그들의 삶을 지탱해 주었다는 것이다.  
 
사실 곰곰이 따져보면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성격도 취향도 식성도 모두 다르다. 학교에 다니며 친구를 만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 다른 점은 더욱 커지게 된다. 더군다나 요즘은 개성을 필수 아이템으로 강요 받는 시대다. 그 차이가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소통의 실패는 쉼 없는 접촉 속에서 진정한 연결고리를 잃어버린 데 있다. 연인끼리든 부부끼리든 또는 무늬가 다른 특정 조직체이든 그들에게 소통은 맹목적인 ‘일심동체’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의 다름을 먼저 이해하는 것만이 완벽한 ‘소통’을 위한 지름길임을 알아야 한다.  
 
오늘 지금부터라도 우리 모두 접촉, 연결, 소통을 생활화하자. 이는 곧 만사형통의 ‘피톨’이 된다. 소통이란 서로간의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의 이질감을 이해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그렇지 않으면 둘 중 하나가 자신을 버리든지, 아니면 소모적인 다툼의 연속으로 인생을 헛되이 살든지, 양자택일을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손용상 / 소설가·한솔문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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