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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세상] 박수근이 나무 그림을 그린 뜻

벌거벗은 듯 앙상한 가지
그곳에서 싹트는 푸른빛

추운 겨울을 이겨낸 생명
코로나19 시대의 희망가

 코로나19와 함께하는 세 번째 봄이다. 첫해는 바이러스 공포에 전 세계인이 숨 막히는 봄이었고, 두 번째 봄은 백신에 희망을 걸며 역병의 종결을 꿈꿨던 시간이었다. 어느덧 코로나와 맞서는 세 번째 봄인데, 혼돈의 끝은 보이지 않고 모두들 지쳐가는 느낌이다. 동트기 직전의 깊은 어둠처럼 여전히 미몽의 시간이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도 마음을 추스르고 코로나 다음의 세계에 대해 냉철히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과거 사례를 놓고 볼 때 인류 문명은 팬데믹 이후에 극적인 반전의 역사를 써왔는데, 그 극단적 사례 모두가 지금 우리 앞에 가능한 선택지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류 최악의 팬데믹이라고 하는 중세 흑사병 이후 유럽은 르네상스라는 빛나는 근대문명을 일궈냈다.  
 
대역병 이후엔 희망적 사례뿐만 아니라 비극의 역사도 존재한다. 20세기 초 전세계 인류를 강타한 스페인 독감의 경우 그 결과는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최악의 인류 공멸의 길이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겪은 팬데믹이 앞으로 어떤 역사로 나아갈지 혼돈스런 상황이다. 세계적으로 미술계는 전례 없는 호황으로 희망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특히 한국미술 시장은 지난해부터 ‘불장(Bull Market)’이 이어지면서, 지난주 화랑미술제 매출액이 지난해 대비 두 배를 훌쩍 넘어섰다. 그야말로 지금 미술계만을 놓고 보면 봄기운이 완연하고 곧바로 르네상스가 새롭게 열릴 것 같은 기대감까지 든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포성으로 근심이 깊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경제적 상황도 밝지만은 않다. 팬데믹 이후 인력난과 물류난으로 인플레이션 공포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이 먼 나라 이야기 같다가도 하루가 달리 올라가는 기름값을 접하면 세계화 속에서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는 점을 비로소 실감한다.
 
미술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지금 상황이 제2의 르네상스로 이어지기를 누구보다 바란다. 그럴 만한 조건도 충분하다.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 이후 미술이 급속히 발전하게 된 것은 미술이 기념과 구원의 매개물로 재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죽음을 목격하고 나서 중세인들은 미술을 통해 자신의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게 됐다. 미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미술 구매 붐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곧바로 르네상스로 꽃피웠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미술시장이 호황인 것은 단순히 자산시장 팽창의 결과로 볼 수만은 없다. 코로나 사태로 고립과 고독의 시간이 이어지면서 스트레스도 커졌지만 동시에 예술과 교감할 수 있는 정서적 성숙함도 깊어졌다. 요즘 미술관이나 화랑에 가면 작품과 심리적 교감을 나누려는 진지한 관람객을 예전보다 훨씬 더 자주 만나게 된다. 분명 코로나 이후 우리는 미술의 정서적 치유능력에 훨씬 더 공감하게 됐다. 이러한 미술에 대한 재인식은 분명 최근 불고 있는 미술시장의 호황을 설명하는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최근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린 박수근 특별전에서 본 나무 그림들이 마음 속 깊이 다가온다. 한국의 반 고흐, 또는 20세기 국민화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박수근은 화가의 길을 걸으면서 나무를 자주 그렸다. 특히 벌거벗은 죽은 듯한 앙상한 줄기의 나무가 처연하게 화면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박수근의 나무 그림은 화가의 고된 삶을 그린 자화상이자 한국 근대사의 힘든 역경을 표현한 시대적 명작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박수근의 나무 그림을 자세히 바라보면서 새로운 점을 깨달았다. 앙상한 가지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미세하게나마 푸른 새싹과 작은 꽃망울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록이나 사진으로는 결코 보이지 않지만 신기하게도 실제 작품 앞에 서면 푸른 색채감이 잿빛 사이로 분명히 느껴진다. 마치 작가는 썩어 말라빠진 앙상한 고목이 죽은 것이 아니라 단지 추운 겨울 속에 웅크리고 있을 뿐이라고 조용히 읊조리는 듯하다. 박수근이 그린 헐벗고 황폐한 나무는 죽은 고목이 아니라 추위를 이겨내는 나목이었다고 소설가 박완서씨가 말했듯이 화가 자신도 나목 속에 초록의 푸른빛을 숨겨 놓은 것이다.
 
박수근의 나목을 바라보면서 이 봄을 지나고 나면 코로나로 얼어붙은 인류의 마음이 푸르른 생기를 되찾으면서 더 따뜻해지기를 꿈꿔봤다. 분명 코로나는 금세기 인류가 겪은 첫 번째 공동의 역경이었다. 그것이 파괴적 미래로 이어지기보다는 인류를 한층 더 성숙한 길로 인도하는 번영의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양정무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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