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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음악인가] 러시아 문화는 무조건 거부?

 한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를 듣고 ‘올 것이 왔구나’ 했다. 다음 달 폴란드에서 여는 독주회의 연주곡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연주하려던 곡들의 작곡가인 라흐마니노프·스트라빈스키가 러시아인이라서다.
 
연주곡목이 바뀐 무대를 상상하니 다른 장면이 함께 떠올랐다. 국제고양이연맹은 고양이 쇼에 러시아 고양이의 출연을 금지했다. 이탈리아의 한 대학에서는 도스토옙스키에 관한 수업을 폐강했다고 한다. 캐나다의 러시아 관련 건물은 파란색과 노란색의 페인트를 뒤집어썼다.
 
그 피아니스트와 나는 하필이면 라흐마니노프와 스트라빈스키라는 역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라흐마니노프와 스트라빈스키는 모두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고국에 돌아가지 못했고 각각 할리우드와 맨해튼에서 생을 마감했다. 러시아 태생으로 뭉뚱그리기에는 각자 사정이 매우 복잡하다.
 
이달 초 영국 문화계에서 ‘루소포비아’, 즉 러시아 혐오가 도마 위에 올랐다. 웨일스의 카디프 오케스트라가 연주곡 중에 차이콥스키를 뺀 이후였다. 비판이 나오자 오케스트라 측은 음악의 내용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러시아가 나폴레옹의 침공을 막아낸 1812년을 기념하는 작품 의뢰에 차이콥스키는 대포 소리, 러시아의 국가가 울려 퍼지는 곡을 완성했다. 요즘 듣기 적절치 않은 곡임이 분명하고, 러시아에 대한 태도에 고려할 요소가 얼마나 많은지 실감케 한다. 그는 “나는 뼛속까지 러시아인”이라고 했지만 ‘1812 서곡’의 작곡은 내키지 않아 했으며 그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주제는 할아버지의 고향인 우크라이나 민요에서 가져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달 24일 이후, 음악계의 첫 반응은 친(親) 푸틴 음악가 퇴출이었다. 권력의 혜택을 봤던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의 공연이 유럽과 북미에서 취소됐다. 여기까지는 이성적이었다. 하지만 유럽의 음악 축제인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러시아인 참가를 금지하는 일이 평화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는 모르겠다.
 
독일의 정치인인 클라우디아 로트는 15일 이런 성명을 냈다. “우리는 잔혹한 광기에 강력하게 반대해야 한다. 하지만 차이콥스키를 듣고 체호프를 읽을 것이다. 러시아 문화가 없는 세계를 상상하고 싶지 않다. 우크라이나의 문화가 없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그 어떤 문화도 거부하거나 도구화해서는 안 된다.” 뉴욕 필하모닉의 대표인 데보라 보다도 이렇게 말했다. “뭉뚱그려 판단해서는 안 된다. 흑백의 문제가 아니다.” 자칫 심각한 실수가 나올 수 있는 요즘, 경청할만한 의견이다.

김호정 / 한국 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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