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광장] 전쟁을 고발하는 예술인들
지금 인류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하루하루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는 상황을 지켜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세계미술사에서 전쟁의 참상과 비극을 기록한 그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스페인 궁정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의 ‘전쟁의 참상(Los desastres de la Guerra)’이라는 판화 시리즈가 아닐까 싶다. 고야는 1808년부터 1814년까지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스페인을 침입한 전쟁에서 목격한 참상을 82점의 판화로 제작했고, 인간 본성에 내재한 광기와 잔인함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사지가 잘려 나무에 매달린 군사와 적군에 처참하게 희생당하는 민간인의 비극을 기록한 이 판화들은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다. 전쟁이 초래한 인간성의 말살과 비극에 대해 천 마디 말보다도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1937년 스페인 내전 당시 독일 나치군이 스페인 게르니카 지역 일대를 비행기로 폭격하는 참상을 보고, 이를 거의 폭 8m, 높이 3m50㎝에 이르는 대형 회화 작품으로 고발했다. 피카소는 폭격으로 다치고 절망으로 절규하는 사람들을 흑백 톤으로 제한된 어두운 컬러와 특유의 큐비즘 기법으로 표현했다. 피카소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한 작품 중의 하나인 ‘게르니카로’로, 이 또한 전쟁의 종식에 대한 인류의 염원을 강한 시각적 언어로 전달한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와 화합을 소망하며 인류의 휴머니즘이 나아갈 길에 관해 이야기하는 현대미술 작가로는 얼굴 없는 거리의 화가로 잘 알려진 뱅크시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는 대포에서 포탄 대신에 꽃들이 쏟아져 나오거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가로막은 장벽에 벽이 뚫리고 아이가 모래 장난하는 그라피티를 그려서 두 나라의 화해를 염원하기도 했다. 또 시리아 내전을 피해 목숨을 걸고 바다로 탈출하는 난민을 구하기 위해 직접 선박을 구입하여 이들의 생명을 구해내기도 했다.
예술가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통역이 필요 없는 만국 공용어 비슷하다. 널리 퍼져나가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는 단순히 시각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보다 적극적으로 전 세계인의 참여를 끌어낸다. 예컨대 전쟁으로 인해 파손 위험에 놓인 우크라이나 유물들에 대한 자료를 디지털화해서 저장하는 작업이 여러 나라의 박물관 관계자들의 참여로 이뤄지고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 우크라이나 파빌리온을 지원하는 움직임에 세계의 예술인들이 동참하고 있고, 우크라이나 출신 예술가들을 초청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위해 세계적인 미술 기관들의 연대가 이뤄지고 있다.
또 많은 예술가는 우크라이나 돕기 전시에 작품을 기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지지를 상징하는 예술가들의 그림들도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 토큰)로 판매되고 있다. 수익금은 물론 피란민에게 전달된다.
음악계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우크라이나 지하 벙커에서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일리아 본다렌코의 연주에 응답하며 전 세계 바이올리니스트 94명이 줌(Zoom)으로 참여한 1분 30초 영상은 열흘 만에 32만여 명이 감상했다. 러시아의 무차별한 침공을 비판하고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한 모금 운동에 세계인의 참여를 끌어냈다.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1724~ 1804)는 1795년 집필한 ‘영구평화론’에서 전쟁은 악이며 영구평화야말로 인류가 도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이고, 이는 세계인의 연대를 통해서만 지켜낼 수 있다고 말했다.
소리치지 않지만 그 어떤 외침보다 강하고, 인류의 마음에 경각심을 심어주고, 그 어떤 무기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 언어로 호소하는 예술가들의 연대에 동참하며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고 다시 평화가 찾아오길 기원해본다.
최선희 / 초이앤초이 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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