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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우크라 전쟁…이면의 목소리들

장열 사회부 부장

장열 사회부 부장

프랑스 언론인 안느 로르 보넬의 다큐멘터리 ‘돈바스(Donbass)’의 첫 장면은 당시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페트로 포로셴코의 격한 연설(2014년)로 시작한다.
 
“우리는 직업을 가질 수 있지만, 그들은 갖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연금을 탈 수 있어도, 그들은 탈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 있지만 그들의 아이들은 지하실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그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다.”
 
포로셴코는 그들에게 전쟁을 선포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의 주민들이다. 돈바스는 친러 성향의 지역이다.  
 
보넬이 담아낸 영상은 끔찍하다. 폭격에 파괴된 건물, 죽음의 경계선을 오가는 주민들, 생존자들이 처한 단절과 고립 등 참상으로 가득하다. 주민들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왜 우리에게 이런 폭력을 가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울부짖는다.
 


8년 만에 다시 전쟁을 마주한 보넬은 “러시아를 비난하는 건 아주 쉽다. 그러나 이 전쟁에 대해 말하려면 유로마이단 시위 이후의 우크라이나를 봐야 한다”고 했다. 당시 우크라이나에서는 친러(동부 지역), 친서방(서부 지역)간 갈등이 심했다. 그러던 중 친러 정권에 대한 친서방 세력의 뿌리 깊은 반감이 극대화하면서 유로마이단 시위(2013년)가 촉발했다. 결국 친러 노선을 택했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실각했고 새 정권이 들어섰다.
 
친서방 성향의 포로셴코는 대통령이 된 직후 친러 지역을 본격적으로 탄압했다. 일례로 포로셴코는 집권 첫날부터 러시아어를 공용어에서 제외했다. 크림반도로 향하던 버스들이 무차별 테러 공격을 받았고, 오데사 지역에서는 반정부 노동조합원 30여 명이 화형을 당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우크라이나 태생의 외교관 출신 올가 수카레브스카야는 3일 ‘존엄의 혁명이 어떻게 전쟁과 빈곤, 급진 세력의 부상으로 이어졌는가’라는 칼럼에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기구(OUN)의 이념을 계승한 급진 세력이 유로마이단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크라이나는 나치즘에 대한 지지를 묵인하고 있다”고 적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날 저널리스트 릭 스털링은 글로벌리서치에 칼럼을 썼다. 그는 미국 고위 관료들이 유로마이단 시위 지원은 물론 우크라이나 내정에 적극 개입했던 사실부터 지적했다.  
 
당시 BBC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차관보를 맡고 있던 빅토리아 누랜드와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인 제프리 피아트가 나눈 통화 녹음을 공개한 바 있다. 누랜드는 이 통화에서 피아트에게 시위를 주도했던 인물들을 평가하며 당시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이 시위 세력을 칭찬했다는 내용까지 털어놓았다. 심지어 누랜드는 유럽 측이 내놓은 절충안을 두고 “젠장할 EU”라며 욕설까지 내뱉었는데, 이는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선동하는데 있어 유럽연합이 방해가 된다는 의미였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스위스 역사학자 다니엘 간세르가 독일에서 진행했던 강연(2017년) 영상을 지난 3일 공개했다. 이 영상에서는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돈바스 지역 폭격(2014년) 이야기가 나온다. 간세르 박사는 “미국은 그 원인을 푸틴에게 돌리고 있지만 사실 미국이 개입해 우크라이나를 나토(NATO)에 가입시키려 한 것이 우크라이나 내부 갈등의 주된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다큐멘터리 감독 폴 모레라가 제작한 ‘혁명의 가면(Masks of Revolution)’도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유로마이단 사태 이후 친러 주민들이 받은 탄압, 네오나치 사상을 가진 무장 민병대가 우크라이나 사회를 장악하며 가한 만행 등이 여과 없이 필름에 담겼다.
 
릭 스털링은 칼럼에서 “우크라이나 동부의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 정부, 반군, 러시아, 독일, 프랑스 등이 민스크협정(2015년)을 맺었다. 나중에 우크라이나 정부와 워싱턴(미국)이 이 협약을 부정했다”고 전했다.  
 
지금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는 오래전부터 이어진 반목의 역사 속에서 발발한 전쟁이다. 여러 논쟁의 지점이 얽히고설켜있다. 전쟁은 분명 아픔이다. 단, 미디어가 보도하는 것만 보고, 읽는 게 전부는 아니다. 이면에는 다양한 관점과 목소리가 존재한다. 선과 악은 도대체 누가 정하는가. 적어도 미국의 주류언론은 아니다.

장열 /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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