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다름’ 인정이 증오범죄 막는다
아시아계 증오범죄. 이제 미국에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이슈다. 코로나19의 원인을 ‘아시안’이란 인종과 연결시키는 분위기가 이어지며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는 커져 갔다. 코로나 상황이 조금 나아지며 아시아계 증오범죄도 조금 잠잠해지나 했는데 최근 다시 급증하기 시작했다.한국계 미국인 스노보더 클로이 김은 “두려움 없이 걷고 싶다”고 까지 했다. 실제로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묻지마 폭행’ 수위는 점점 잔인해지고 있다. 살인으로 이어지는 일도 잦아졌다. 실내에서 어쩌다 기침이라도 나올 것 같으면 걱정부터 앞선다. 아시안이란 이유에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존재로 인식될까 싶은 두려움도 생긴다.
사람들은 외양적 표식을 토대로 타인에게 ‘유니폼’을 입히는 것에 익숙하다. 시각화된 외양을 바탕으로 이미지와 평판을 주조해내고, 이렇게 한 개인이 한 집단으로 그룹화되는 순간 더 이상 그는 하나의 개별적 주체가 되지 못한다. 그저 만들어진 틀 안에 갇혀 있는 하나의 객체에 불과하게 된다. 편견과 증오, 적대감이 계속 이어지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아시아계를 주로 공격하는 이들은 흑인, 은근히 무시하는 이들은 백인. 이런 프레임도 사실 우리가 만들어낸 하나의 틀에 불과하다. 모든 흑인이 아시아계를 공격하지 않고, 백인이라고 아시아계를 늘 무시하지 않는다. 증오범죄가 두렵고 인종차별이 싫다고 외치는 아시아계조차 우리와 다른 외양을 하나의 틀로 묶어버리는 데 익숙하지 않은가.
한국 사회도 더는 인종 갈등 무풍지대가 아니다. 이미 인터넷은 물론 일상 생활에서도 이방인에 대한 혐오 언어는 난무하다. 함께 살아도 절대 섞이지 않는 마치 물과 기름처럼 말이다. 분명 지난 30여 년간 계속된 세계화 속에서 한국 사회의 인종·종교·문화적 다양성이 많이 증가했다.
하지만 다름에 대한 수용성은 여전히 밑바닥에 머무는 수준이다. 피를 나눈 동포라도 조선족이나 탈북자는 여전히 주변인으로 남아있고 극소수 난민 신청자는 잠재적 테러범이란 낙인이 찍혀있다.
이런 여러 이유에서 증오범죄, 더 나아가 인종간 갈등을 완벽히 해결하긴 분명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눈뜨고 당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순 없다. 이를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낡은 처방이긴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적 대안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 이미 아시아계 증오범죄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단순히 보여주기식이어서는 안 된다. 당장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대안이어야 한다.
누가 봐도 증오범죄인데 단순 폭행으로 수사를 종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보다 명확한 가이드라인, 그리고 교육이 필요하다.
소수자의 권인 보호를 위한 시민단체간 효율적 연대도 빼놓을 수 없다. 아시아계 단체들이 똘똘 뭉쳐 힘을 보여줘야 한다. 최윤희 뉴욕한인학부모회장은 “미국에서 무시 당하지 않으려면 아시아계도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는 프레임의 BLM 운동 때 얼마나 많은 흑인들이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냈는가. 최 회장은 아시아계 증오범죄에 대해 한인과 아시안들의 연대가 부족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시위 참여율도 저조하다고 했다. 그는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모임에 많이 참여해서 범죄에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우리 마음 가장 밑바닥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다름’에 대한 인식을 깨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다름에 대한 기존 시각을 지우고, 허물어야 한다. 다름에 대한 포용의 폭을 넓혀가는 일, 그것이 새로운 세상을 여는 일이다.
홍희정 / JTBC LA특파원·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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