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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개척시대] 국가안보와 인공지능 실력

첨단 국방 체계는 AI 활용이 필수
AI 실력이 안보 역량 좌우할 것

높은 성능·신뢰성 갖추기 위해
기초 AI 연구에 관심 기울여야

 온 국민이 지구 건너편 전장(戰場)에서 전해져 오는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따져 묻는 것과는 별개로, 무수한 생명이 희생되는 장면에 가슴 아프다. 30여 년 전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린 이후 인류가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평화와 번영을 누릴 일만 남았다는 기대로 가득 찼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기대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이처럼 변화한 안보 환경에 대비하여, 우리는 어떻게 국방력을 향상시키고 국민의 안전을 지킬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한국의 미래 안보 역량은 우리가 얼마나 우수한 인공지능 실력을 갖출 수 있을지에 따라 좌우되는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이제 단순히 군인 수와 같은 양적 우위만으로 섣불리 국방력을 판단하기 어렵게 되었다. 얼마나 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무기를 갖추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운용·지원 체계를 갖추고 있는지가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이렇듯 첨단화된 국방체계에서 인공지능의 역할은 핵심적이다. 전장의 정보를 다층적으로 수집하여,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려면 인공지능의 활용은 필수적이다.
 
특히 인공지능이 가져올 시간상 이점은 미래전의 양상을 완전히 바꿔 놓을 수 있다. 전장에서는 순간의 판단이 결과를 좌우할 수 있다. 적군이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1초도 걸리지 않아 즉각적으로 공격 결정을 내린다면,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지 않고서는 그에 대응하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안보 및 국방 분야에 있어 인공지능 도입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미국은 빠른 행보를 보인다. 미국 국방부는 2018년 “인공지능을 통해 국방부를 변화시키겠다”라는 목표를 세우고 ‘합동 인공지능 센터(Joint AI Center)’를 창설했다. 구글의 전 회장 에릭 슈미트를 위원장으로 하여 ‘인공지능 국가안보위원회’를 설치하고 실리콘 밸리의 능력과 경험이 국방 분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였다. 2020년 미국 인공지능 국가안보위원회는 700페이지가 넘는 보고서를 통해 인공지능 기술을 국가 안보에 적용할 것을 주문했다. 국방 분야에 인공지능 분석 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관련 연구개발 예산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때 인공지능의 군사적 활용에 반대하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2018년 구글 직원 3000여 명은 구글이 전쟁 사업에 참여하는 것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였고, 결국 구글은 군사 프로젝트에 대한 입찰을 포기하기도 하였다. 인공지능 기술의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큰 위험이 초래될 가능성도 있다.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것처럼 인공지능 살상 로봇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인류를 절멸 위기에 빠뜨릴지 모른다는 시나리오는 진지하게 고려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공지능 기술의 군사적 활용을 금지하는 것은 현실적인 대응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국제법상으로 자율살상무기 활용을 금지하려는 노력은 2014년부터 이어져 왔지만, 여전히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국제적 합의가 도출될 것 같지도 않다. 무엇보다 국제협약으로 이를 금지하더라도, 전체주의적 권력이 이를 무시하거나 비밀리에 자율살상무기를 개발하여 활용하는 것을 막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군사 목적 인공지능 자체를 금지하기보다 이를 현명하게 활용하는 방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불가피하다.
 
관점을 바꾸어 생각하면 군사 목적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한 결과 오히려 인류 복지에 크게 기여할 수도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인터넷 기술도 그 역사를 따져 보면 냉전 시대 군사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인터넷은 핵전쟁이 발발하더라도 통신이 두절되지 않도록 고안된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인공지능을 군사 목적으로 활용하려면 현재보다 더 높은 수준의 성능과 신뢰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 혁신이 가능하게 될 여지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인공지능 실력이다. 민간에서 개발된 기술을 국방 분야에 도입하고, 국방을 위한 인공지능 기초 연구개발에 나설 수 있는 인력과 역량이 필요하다. 이는 당면한 안보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중장기적 과제에 가깝다. 적절한 계획을 세우고 차근히 실행해 가야 한다. 충분한 관심과 예산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김병필 /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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