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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멸치 똥을 따고 싶지만

신기하게도 자다가 눈을 뜨면 새벽 4시다. 다시 잠들기를 기다린다.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자려고 누워 있는 것도 힘에 부친다. 창밖의 새들이 조잘거린다. 부지런한 새들은 나에게 일어나라고 재촉한다. 잠을 다시 자려고 누워서 버티는 것이 한심하다. 벌떡 일어났다.  
 
커피잔을 들고 창밖을 내다봤다. 간밤에 비가 내렸는지 길바닥이 거무칙칙하다. 아무도 없는 거리에 하얀 차 한 대가 물결치는 소리를 내며 길 건너 건물 앞에 멈췄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호기심으로 그 누군가를 나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차는 한동안 깜빡이등을 켜고 있다가 그냥 떠났다.  
 
멸치 똥이라도 따자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냉동칸을 뒤적거렸지만, 멸치가 없다. 한국장을 간 지가 오래되었거니와 간다고 해도 비싼 멸치를 선뜻 집어 올 수가 없었다. 박스로 사다가 쟁여 먹던 예전과는 달리 작은 포장 멸치를 사 왔었다. 다듬을 틈도 없이 이미 바닥이 났다. 밥상 위에 수북이 놓고 멸치 배를 가르던 시절만 해도 여유로웠구나!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다. 미국장에 비해서 한국장은 손님에게 겁주듯이 올린다. 지금 이 시간에도 라벨기로 올릴 가격을 찍고 있겠지? 멸치가 뭐라고. 이젠 고만 먹자. 한국장도 가지 말아야지.
 
아침에 오트밀 죽을 손수 해 먹는 남편을 위해 빵이나 구워야지. 남편이 구수한 빵 냄새가 나면 환한 얼굴로 좋아하겠지. 오트밀 한 컵과 밀가루 한 컵에 베이킹파우더와 소금 그리고 설탕 대신 건포도와 호도를 넣어 훌훌 섞어준 다음 버터 대신 올리브 오일과 달걀과 우유를 넣고 슬슬 섞어서 오븐에 넣었다. 이스트를 넣고 숙성시켜 밀가루 반죽을 치대는, 과정이 복잡한 빵은 이따금 아주 가끔 기분이 당길 때만 한다. 대부분은 베이킹파우더를 넣고 간단히 만들어 먹는다.  
 
남편은 옥수수빵을 좋아한다. 어릴 때 학교에서 얻어먹던 기억 때문인듯하다. 60년대, 그 많은 학교에 아이들의 고픈 배를 채우라고 미국에서 잉여 농산물 옥수숫가루를 보내줬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말을 되뇌곤 한다. 미국에 와서 보니 이곳 사람들이 간편하게 먹는 콘 머핀이다. 옥수숫가루를 사야지 하면서도 깜박 잊고 밀가루만 사 온 것이 못내 아쉽다.
 
남편은 건강에 나쁘다는 음식은 거의 먹지 않는다. 식당도 될 수 있으면 가지 않으려고 애쓴다. 집에는 설탕도 미원도 없다. 남들이 우리 집 음식을 먹으면 맛이 없다고 하겠지만, 건강식이라고 설거지하기 좋게 그릇을 싹싹 비운다. 마치 스님들이 밥알 하나 남기지 않고 공양 그릇 비우듯.
 
빵 반죽을 오븐에 넣고 창가로 다가갔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허드슨강 저 멀리 뉴저지가 어둠을 뚫고 스멀스멀 밝아진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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