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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세탁소에서 생긴 일 - 슬픈 소식과 기쁜 소식

 1. 슬픈 소식
 
지난주 수요일에 세탁소로 전화 한 통이 왔다. 사실 하루에 세탁소로 걸려오는 전화가 한 두 통이 아니건만, 그 전화는 특별했다. 세탁소로 걸려오는 전화의 대부분 비즈니스에 관한 것이다. 자기가 맡긴 옷이 다 되었는가를 묻는 일부터 가게 위치며 세탁비에 관한 내용이 전화 통화의 거의 전부를 차지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세탁소에서 전화 통화할 때 내 목소리는 늘 메말라 있는 편이다.
 
그러나 수요일에 걸려온 전화는 내 목소리에 감정이 실리게 하는 그런 종류의 사사로운 것이었다. 수화기를 들면서 발신처를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아주 낯이 익은 이름이었고 그 친구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석 달을 훌쩍 건너뛰었기 때문이었다. 수화기에서 흘러나온 음성은 론(Ron)의 아내의 것이었다. 론과 그의 아내는 그저 손님의 하나가 아니라 잠깐씩이라도 개인적인 마음을 나누는 나의 친구 사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론의 아내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나중에 확인해본 결과 작년에 마지막으로 세탁소에 들르고 일주일 후에 세상을 뜬 것이다.
 
10여 년 전에는 그의 아내로부터 교통사고로 외아들을 잃었다는 소식을 접한 기억이 있어서 론의 사망 소식은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쓰리고 아렸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것은 작년이지만, 늦었어도 내게 그 소식을 전해야 할 것 같아서 전화했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넬 수 없었다. 그저 “So sorry”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건조하던 내 목소리에서 울음이 묻어 나왔다. 나는 어떻게 그 전화통화를 마무리 지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론의 아내는 밸런타인데이에 내게 전화를 했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 버지니아에서 짧은 여행을 하고 있어서 전화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온 수요일에서야 뒤늦게 그녀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밸런타인데이에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웠던 두 사람, 남편과 아들의 기억 때문에 무척 아팠을 것이다. 그녀는 나에게 전화를 해서 더는 사랑을 전할 수 없는 그 아픈 마음 한 자락을 꺼내 보이고 싶었던 것일까?
 


2. 기쁜 소식
 
G는 이민 초창기부터 인연을 맺었던 친구다. 인연이라는 말과 친구라는 말이 결합하면 뭔가 깊고 그윽한 인간관계가 연상되지만, 그와의 인연은 한마디로 악연이었다. G는 한 마디로 어린 악마였다. 내 상상력을 벗어나는 악행으로 나를 곤경에 빠뜨리곤 했다. 그것은 그 친구의 머리가 얼마나 비상한가를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했다. 우리 아이들 또래의 G는 결국 열다섯 살 때인가 내 일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권총으로 강도질을 하다가 살인을 했다는 그의 소식이 들려왔을 때, 나는 더는 그를 보지 않아도 되어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나의 일상에서 지워졌다.
 
그런데 20년 전쯤에 그에게서 편지 한 통이 왔다. 우리 아이들의 안부를 물으며 나를 Second Father라고 부르고 싶다는 내용이었는데,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았음에도 그 내용이 제법 절절하고 글씨며 문법도 훌륭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와의 인연이 이어졌다. 감옥으로 면회도 다녀왔고, 용돈도 몇 차례 보내주었다.
 
G는 가석방으로 몇 해 전 출소를 했다. 우리 세탁소를 몇 번을 찾아오면서 우리 인연은 계속되었다. 한동안 소식이 없더니 지난주에 세탁소로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자기가 곧 아버지가 될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러면서 내 개인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전화번호를 알려주자 그는 나에게 최근의 사진을 보내주었다. 배가 잔뜩 부른 여자 친구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G는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어린 시절, 아빠를 모르고 살았던 G는 아빠를 그리워했고, 아빠의 모델을 거리에서 찾았다.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희열을 그는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빠도, 엄마도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 (있어도 아빠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그래서 나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나도 기쁘고 G에게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
 
3. 나는 젊은 시절 시를 쓰고 싶어 했다. 나는 시를 감정의 표면장력의 상태를 글로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응축된 감정이 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응어리진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의 감옥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결국 나는 한 줄의 시도 쓰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감정을 듣고 말하는 통속주의 예찬자가 되고 말았다. 누군가에게 슬픔과 기쁨을 말할 수 있다면, 그리고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축복이 아닐까? 나는 현재 뼛속까지 통속 예찬론자임을 고백한다.

김학선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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