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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지지 후보를 숨기는 이유

“꼭 말해야 하나요?” 이제 막 30세가 됐다는 한 남성은 어느 후보의 이름 옆에 도장을 찍었는지 끝내 말하지 않았다.
 
5일 오후 서울 종로 가회동 주민센터 앞. 사전투표를 하기 위해 몰린 이들로 입구 앞부터 줄이 길었다. 연인과 데이트하거나 친구와 놀러 나온 2030대가 많았는데 누구에게 투표했냐는 질문에 대부분 답을 피했다.
 
이들은 ‘샤이 보터’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때 미국에서 만들어진 말인 샤이 보터가 국내 유행이 됐다. 이재명·윤석열 둘 중 어느 후보에게 투표했든 쉽게 말하지 못 한다. 5년간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선출하는 대선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됐다는 건 비극이다. 헌법 67조에 쓰인 비밀선거가 개인 간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 아님에도 이번 대선에선 유독 엄격히 지켜진다.
 
지난 대선 땐 ‘샤이 보수’가 화두였다. 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2020년 총선에선 ‘샤이 진보’라는 말이 나왔다. 올해는 샤이 보수·진보가 다 넘친다. 그런데도 사전투표율은 36.9%(1632만3602명)로 역대 최고다. 지난 19대 대선 사전투표율(26.1%)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드러내긴 부끄러우면서도 “이 사람만은 도저히 대통령이 되는 걸 볼 수 없다”는 절박함이다.
 
유명인이 손가락이나 옷 색깔로 공공연히 누구를 찍었는지 드러내는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 뒤엔 지난 대선의 기억이 있다. 이번 정부에서 집값이 치솟자 “문재인 대통령 뽑은 무주택자는 욕하지 마라”, 코로나19 방역으로 자영업자 피해가 커지자 “문 대통령 뽑은 자영업자는…” 식의 말이 넘쳤다.
 
그러다 보니 대선을 놓고 하는 대화와 토론도 드물다. “누가 낫다”, “누구 공약이 더 좋다”는 얘기는 이번 선거운동 기간엔 거의 듣지 못한 화제다. 내가 뽑은 후보가 진짜 대통령이 됐을 때, 그 5년 후가 자신이 없다는 뜻이다. “가족끼리 선거 얘기하지 말라”는 건 정설이 됐다.
 
특정 후보 지지가 숨겨야 할 일이 된 또 다른 이유는 극단으로 갈린 사회에 있다. 내 편이 아니면 상종하지 못할 적이 됐다. 이재명 후보는 경쟁하는 상대방을 “주술사에 의존한다”고 말하고, 윤석열 후보는 여당을 놓고 “히틀러나 무솔리니 같은 파시스트”에 비유한다. 성향을 드러내는 건 조심스러운 일이 됐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정치 양극화는 민주주의의 위기 신호”라고 분석한다. 다른 정치이념을 틀림이나 악으로 규정하면서부터 대화가 단절되고 민주주의 붕괴가 시작된다는 경고다. 두 교수가 분석한 미국의 정치 상황과 지금의 한국은 닮았다.
 
나 또한 찍은 후보를 비밀에 부친다. 혹 그가 당선되고, 5년이 지난 때에 “내가 뽑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정진호 / 한국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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