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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자유인 이어령의 창조적 생각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이어령 선생은 여러 면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지성인, 무엇보다도 창의력에 빛나는 지성인이었다.
 
요새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참 많고, 이들 ‘스타 지식인’의 영향력도 상당하지만 그중의 으뜸은 단연 이어령 교수였다. 말도 참 잘하고 글솜씨 빼어나고 생각도 깊고 근본적이다. 무엇보다도 새롭고 신선해서 매력적이다. 젊은이들보다 훨씬 젊은 청년이었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은 말을 많이 하거나 아무 말이나 마구 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은 알아듣기 쉽고, 재미있어서 오래 기억에 남고, 본질의 핵심을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하는 내용을 정확하고 깊게 이해해야 하고, 속에 든 것이 많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듣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는 진심 어린 배려심이다.
 
그런 점에서 이어령 선생은 단연 탁월하다. 꼭 알맞은 비유와 예시를 활용하여 사물과 진리의 핵심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매우 어렵고 까다로운 논리도 아주 쉽고 명쾌하게 설명하는 능력은 단연 뛰어나다. ‘언어의 마술사’라는 칭호가 잘 어울렸다.
 


더욱 소중한 것은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것들에서 사물의 본질을 짚어내 앞날 위한 방향을 제시하는 재능은 정말 탁월하고 소중하다. 축소지향의 일본인, 가위바위보 미학, 보자기론, 생명경제론, 디지로그 등등… 참으로 참신하고 기발한 발상이다.
 
세상을 떠나기 전, 죽음을 앞두고 절실하게 토해낸 말들을 인터뷰 형식으로 모은 ‘이어령의 80년 생각’이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등의 책에 그런 창의적 생각이 가득하다. 특히 죽음에 대한 생각, 죽음을 기다리며 탄생의 신비를 이야기하는 통찰력은 인간 존재에 대해 깊게 생각하도록 이끌어준다. 죽음이 생의 한가운데 있다는 가르침을 준다.
 
이어령 선생의 통찰력은 알아듣기 쉽다. 예를 들자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를 뱀과 도마뱀에 비유해서 설명하는 내용 같은 것은 절묘하다. 이 우주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즉 입자와 파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디지털은 셀 수 있게 분할이 되어 있어 계량화된 수치 즉 입자이고, 아날로그는 연속된 흐름 즉 파장이라는 설명이다.
 
“더 쉽게 얘기해볼까. 산동네 위의 집이라도 올라가는 방법이 다르지. 언덕으로 올라가면 동선이 죽 이어져서 흐르니 그건 아날로그야. 계단으로 올라가면 정확한 계단의 숫자가 나오니 그건 디지털이네. 만약 언덕과 계단이 동시에 있다면 그게 디지로그야.”(‘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에서)
 
이어령 선생의 평생 목마른 사람들을 위해 우물 파는 일에 외롭게 앞장서온 치열한 도전정신, 쓰고 싶은 글을 쓰기 위해서 병원 치료를 거부하는 고집 등은 우리 시대 참 스승의 모습을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줬다.
 
특히 서양문명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의 해답을 동양과 한국의 생각과 철학에서 찾는 지혜는 대단히 소중하다. 이런 지혜는 인문학의 기본자세인 것은 물론이고, 예술가들이 꼭 배워야 할 교훈으로 여겨진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가르침이다. 예를 들어 88서울올림픽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굴렁쇠 굴리는 소년이 보여준 침묵의 미학 같은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돌파구를 찾는 서양 문화가 동양 예술의 미학에 주목하는 추세가 강해지는 요즈음 이어령 선생이 남긴 창의적인 시각은 더욱 소중하게 빛을 발할 것이다.
 
고인의 뒤를 이어 지혜의 우물을 팔 사람은 누구일까?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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