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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우크라이나 전쟁과 예술인의 딜레마

 2014년 12월. 러시아의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기부금을 냈다. 받는 쪽은 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 공연장, 금액은 100만 루블(당시 기준 약 2000만원).
 
8년 만에 다시 보니 등골이 서늘해지는 행동이었다. 도네츠크 지역은 친 러시아 분리주의자인 올레그 차레프가 통치 중이었고, 주민들은 피신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네트렙코는 노보로시야(Novorossiya), 즉 블라디미르 푸틴의 ‘새로운 러시아’ 깃발을 차레프와 함께 들고 사진을 찍었다. AFP·가디언 등은 네트렙코의 기부에서 정치적 의도를 읽어내며 비판했다.
 
최근 상황에 비하면 약한 비난이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달 24일 이후, 세계 무대의 러시아인들은 입장 표명을 요구받고 있다.  
 
음악계의 입장은 강경하다. 푸틴 대통령의 친한 친구인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상황은 놀라울 정도다. 음악계의 황제로 불렸던 그는 뉴욕 카네기홀의 빈필 지휘를 하루 전 취소 ‘당했고’, 소속사에서는 방출됐다. 뮌헨 필하모닉은 그가 러시아 비판 입장을 내지 않으면 상임 지휘자로 3년 남은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선포했다.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 네덜란드 로테르담 필하모닉도 같은 조건으로 공연 취소를 내걸었다.  
 


게르기예프는 내몰리는 러시아 아티스트를 대표하긴 하지만, 유일하진 않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 발레, 오케스트라 투어를 취소하고 라인업에서 러시아인들을 빼고 있다.
 
몇몇 러시아 음악인들은 빠르게 입장을 내놨다. 지휘자 블라디미르 유롭스키는 베를린 방송교향악단과 우크라이나 국가를 연주했다.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은 전쟁에 반대한다는 동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도 베를린필을 통해 “푸틴의 흉악한 공격은 세계 평화 전체에 대한 야비한 칼날”이라고 했다.
 
안나 네트렙코도 움직였다. 덴마크에서 오페라 공연이 취소된 다음 날인 지난달 26일 성명이다. “전쟁에 반대한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예술가들은 정치인이 아니다. 고국을 공개 비판하는 일도 옳지 않다.” 다소 석연치 않은 입장문이고 여론은 여전히 매섭다.
 
8년 전 과감한 행동 뒤에도 별 탈이 없었던 네트렙코로선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세상이 이렇게 변했다. 성악가는 정치인이 아니고, 지휘자가 전쟁을 일으킨 것도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명확한 태도를 기대한다. 책임을 질만큼 혜택을 그동안 누려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SNS 등으로 모두의 ‘입장 표명’이 아주 쉬워졌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평화와 안전이 모두에게 더욱 절박해졌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가 게르기예프의 카네기홀 취소를 전하며 표현했듯,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the whole world has changed)’.

김호정 / 한국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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