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한인사회 정신적 지주 역할 앞장
도산 막내아들 ‘랄프 안’
랄프 안 선생은 안창호 선생이 미국을 떠난 이후 태어난 막내아들로 평생 아버지를 직접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고인은 어머니 이혜련 여사, 형 필립, 누나 안수산 여사와 함께 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랄프 안 선생은 1926년 태어나 LA에서 성장했다. LA 시티칼리지와 캘스테이트 LA를 졸업했고 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에 복무했다. 이후 초중등학교 교사, 식당 경영자, 광고모델로 활동했다.
랄프 안 선생은 독립운동가 후손 모임인 ‘파이오니어 소사이어티’ 모임을 주관하는 등 한인사회 정체성을 되새기는 대부분 행사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지난 2019년 4월에는 한국 보훈처가 한국에서 주관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2021년 LA한인사회 8·15 광복절 기념행사 때도 축사에 나섰다.
고인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막내아들이란 명예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고인은 생전 인터뷰에서 “1963년 36세 때 어머니와 함께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며 “아버지를 추모하는 행사에서 나도 모르게 크게 울었고 머리로만 알던 아버지의 존재를 마음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고인은 사람을 대할 때 항상 온화한 웃음을 잃지 않고 예의와 기품을 내보였다. 한인 정체성 교육에 앞장설 때면 한인 청소년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고인은 “한인 청소년의 미래는 (우리 때와 달리) 여러 제약이 사라졌다. 그들의 앞날이 무궁무진하다. 한인 청소년은 얌전하지만 기품이 있고 도전정신으로 가득 차 있다”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고인은 한인사회 성장과 발전을 누구보다 기뻐했다. 그는 흥사단 LA지부와 생전 인터뷰에서 “한인사회는 훌륭한 커뮤니티로 여러 교회, 단체, 청소년 단체가 활동한다. 충분히 잘하고 있고 진정 훌륭한 커뮤니티”라고 평가했다.
고인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나눈 편지 내용을 인용해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는 사랑의 뜻을 강조했다. 가족을 위한 사랑, 친구를 위한 사랑, 한인사회와 커뮤니티를 위한 사랑, 조국사랑 등을 통해 우리 모두 인내와 용기를 지켜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 랄프 안 선생의 유가족은 고인의 유지에 따라 장례식을 치르지 않기로 했다. 흥사단 LA지부(대표 이준학)는 유가족 뜻을 받들어 추모행사를 준비 중이다. LA한인회(회장 제임스 안)도 유가족 및 한인사회 단체와 협의해 추모행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김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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