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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치매가 나쁘지만은 않다니

“놀랄 때 꼬이고 살필 때 풀린다. 내 한 생각에 내가 놀아나는 격이다.”
 
어느 스님의 말씀처럼 예전에 나는 문제가 생기면 놀라서 장이 꼬여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일을 해결한다고 성급하게 처리하다가 더욱더 뒤틀려서 갈팡질팡했다. 문제 해결은커녕 굴린 눈덩이가 불어나듯 크게 만들고 후회했다. 변기에 앉아 놀란 문제를 찬찬히 살피다 보면 별일 아닌 것으로 놀랬구나 깨닫는다. 그리곤 꼬인 일을 실타래 풀듯 살살 풀었다.  
 
지금은 풀어야 할 문제가 생기면 두려움에 상황을 혼동하거나 지나치게 받아드리지 않고 가만히 지켜본다. 짧으면 이틀, 길면 한두 주일간 옆에 밀어놓고 어떻게 해결할까 궁리한다. 그러다 보면 굳이 내가 행동을 취하지 않아도 스스로 해결될 때가 있다. 서둘러서 해야 할 일이 있고, 기다려야 좋은 결과를 얻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고치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친구와 차를 타고 가다가 종종 길을 잃어버린다.  
 


“그냥 가. 가다 보면 길은 통하게 되어 있어. 돈 벌러 가는 것도 아니고 약속을 해 놓은 것도 아닌데. 길 잃어 잘못 가다가 오히려 재미있는 일이 더 많았잖아.”
 
“맞아. 조바심치다 사고 나지 않은 것만도 감사해야지. 즐겁게 놀자고 하는 일인데 어디 간들 다를까?”
 
나이가 드니 예전처럼 그리 놀랄 일도 없다. 그리고 별로 놀라지도 않는다. 허겁지겁 시간에 쫓기고 싶지 않아 서두르지 않아서일까? 해야 할 일을 깜박 잊고 있다 보면 스스로가 해결되는 것이 기억력이 없어져서일까?
 
나이가 든다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고 편리한 점도 많다. 그나마 없던 암기력이 더 없어져 기억할 수도 없지만,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될 일은 그냥 무시해버린다. 여생 편해지려고 좋은 기억만 남기고 좋지 않은 기억은 머릿속에서 쓸어내며 비워내기를 습관적으로 한다. 쓸데없는, 굳이 되돌리고 쉽지 않은 기억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진다.  
 
재작년, 96세에 돌아가신 시어머니는 죽기 전까지 건강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잘 드시던 식사를 하지 않으셨다. 갑자기 치매가 와서 밥 먹는 것을 잊으셨던 것이다. 입을 벌리는 것도, 음식을 씹는 것도, 넘기는 것도 잊으셨다. 배고픔도 잊으신 듯 주무시다 돌아가셨다.  
 
몸이 아파서 힘들게 곡기를 끊고 죽는 노인들도 있다는데 시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잠깐 온 치매가 곡기 끊는 것을 도와줘서 편히 가셨다. 자식들이 힘들지 않게 마지막 선물을 안겨주신 듯하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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