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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부패로 망했다

  
 
유사 이래 수없이 반복되었던 국가들의 흥망성쇠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국가 멸망의 내적 요인으로 부정부패가 가장 대표적으로 지목된다. 한 나라의 발흥기에 확립된 국가기강은 태평성대를 거치면서 느슨해지다가 말기에 이르러서는 문란해지며 국가를 흔드는 가장 치명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1800년 6월29일 개혁군주 정조가 갑자기 붕어했다. 11세의 순조가 즉위하자 대왕대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했다. 이후 외척들이 득세하면서 헌종, 철종까지 안동김씨, 풍양조씨의 60년 세도정치가 이어졌다. 권력독점은 매관매직으로 이어졌고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이는 삼정의 문란으로 나타났다. 전정은 토지 한 결당 쌀 4~6두를 내던 것을 20결을 내게 했고 없는 땅을 있는 것처럼 조작해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했다. 또한 군정은 1년에 군포 1필을 냈는데 이를 고을별로 총액을 정해 거두어 관리들이 이를 이용해 백성을 수탈했다. 이로 인해 먹고 살기 힘들어 혹여나 도망이라도 가면 연대 책임을 물어 그 몫의 군포를 내야 했고 어린아이나 심지어 죽은 사람까지 군적에 올려 군포를 받곤 했다. 삼정 중에서 환곡의 문란이 가장 심각했다. 빌릴 의사가 없는 사람에게 강제로 곡식을 빌려주었는데 빌려 준 곡식의 질이 매우 심각했다. 곡식에 모래가 섞여 있는 것은 물론이고 반이 겨로 되어 있는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는 곡식을 주지도 않고 이자를 납부하라는 어이없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환곡된 곡식은 엄청난 고리대로 변질되었다. 삼정이 문란하게 되자 백성은 도탄에 빠졌다. 영화 ‘군도’는 1862년 (철종 13년)에 일어난 ‘진주민란’을 배경으로 한다. 진주민란은 당시 삼남지방(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을 휩쓸었던 농민봉기로 1862년 한해에만 전국에서 71회의 민란이 일어났다.  
 
당시 삼정의 문란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는 다산 정약용이 지은 ‘애절양(哀絶陽)’이라는 시에 잘 나타나 있다. 애절양(哀絶陽)은 “생식기를 잘라버린 서러움”이란 뜻으로 정약용은 이 시를 짓게 된 동기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이 시는 계해년(1803) 가을 내가 강진에서 지은 것이다. 그때  갈밭마을에 사는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3일 만에 군적에 올라 있어 이정(里正)이 군포 대신 소를 빼앗아가니 격분한 남편은 칼을 뽑아 자신의 남근을 잘라버리면서 "나는 이 물건 때문에 이런 곤액을 받는구나" 했다. 아내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남근을 가지고 관가에 가서 울면서 호소했으나 문지기가 막아버렸다. 내가 이를 듣고 이 시를 지었다.”
 
“갈밭마을 젊은 아낙 그칠 줄 모르는 통곡소리/ 현문을 향해 가며 하늘에 울부짖길/ 싸움터에 나간 지아비가 못 돌아오는 수는 있어도/ 남자가 그 걸 자른 건 들어본 일이 없다네/ 시아버지는 삼상 나고 애는 아직 물도 안 말랐는데/ 조자손 삼대가 다 군적에 실리다니/ 가서 아무리 호소해도 문지기는 호랑이요/ 이정은 으르렁대며 마굿간 소 몰아가고/ 칼을 갈아 방에 들자 자리에는 피가 가득/ 자식 낳아 곤액 당한 것 한스러워 그랬다네/ 무슨 죄가 있어서 잠실음형 당했던가/ 민땅 자식들 거세한 것 그도 역시 슬픈 일인데/ 자식 낳고 또 낳음은 하늘이 정한 이치기에/ 하늘 닮아 아들 되고 땅 닮아 딸이 되지/ 불깐 말 불깐 돼지 그도 서럽다 할 것인데/ 대 이어갈 생민들이야 말을 더해 무엇하리/ 부자들은 일 년 내내 풍류나 즐기면서/ 낟알 한 톨 비단 한 치 바치는 일 없는데/ 똑같은 백성 두고 왜 그리도 차별일까/ 객창에서 거듭해서 시구편을 외워보네.”
 
조선을 네 차례 방문한 영국의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조선 관료들의 부정행위는 마치 히드라(머리가 아홉 개 달린 그리스 신화 속 괴물)의 머리 같아서 아무리 잘라내도 끝이 없다”고 적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을 쓴 미국의 퍼시벌 로웰은 “조선 관리의 수는 적으나 그들이 곧 나라의 주인이고 나머지 사람은 인구를 늘리는 역할만 할 뿐”이라고 개탄했다.  
 
당시 전라도 강진에 유배 중이던 다산 정약용은 흑산도에 유배 중인 둘째 형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에서 “천하는 썩어버린 지 이미 오래입니다”라고 하였고, 〈방례초본 〉(미완성인 이 책은 나중에 책 제목을 〈경세유표 〉로 바꿈)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세상이 털끝 하나까지도 병들지 않은 곳이 없으니, 지금 이것을 고치지 않는다면 반드시 나라를 망하게 하고야 말 것이다.”또한 1821년에 쓴 〈목민심서〉 자서(自序)를 읽어보자.“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둬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기를 줄은 모른다. 백성들은 여위고 시달리고, 시들고 병들어 쓰러져 진구렁을 메우는데, 그들을 기른다는 자들은 화려한 옷과 맛있는 음식으로 자기만을 살찌우고 있다.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조선은 스스로 망했다. 무능한 고종과 부귀양명에 눈이 먼 신하들이 망국의 길을 자초했다. 맹자는 “한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그 나라 스스로가 망할 짓을 한 후에 다른 나라가 그 나라를 멸망시킨다..”라고 했다. 조선이 망한 것은 일본의 침략 이전에 우리 스스로 ‘망할 짓’을 했다는 의미다. 군주인 고종은 무능했고, 신하들은 부패해 권력만 탐했고 가렴주구를 일삼아 나라를 망할 지경으로 만들었다. 나라는 망했지만 왕실은 일제로부터 엄청난 은사금을 받았고 신하들은 백성들의 피폐함에도 불구하고 호가호위했다. 오죽했으면 중국의 계몽 지식인 량치차오(梁啓超)가 한일합방 직후인 1910년 9월에 쓴 〈조선 멸망의 원인〉이라는 글에서 “일본이 정예를 길러 남의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것만이 문제겠는가. 돌이켜보건대, 조선이 망하는 길을 취하지 않았다면 비록 100개의 일본이라고 하더라도 저들이 어쩌겠는가.”라고 통탄했다. 량치차오는 “조선을 망하게 한 자는 처음에는 중국인이었고, 이어서 러시아인이었으며, 마지막은 일본인이다. 그렇지만 중국·러시아·일본인이 조선을 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 조선 스스로 망한 것이다.”라고 했다. 그렇다. 조선은 스스로 망한 것이다.
 
오늘이라고 달라졌을까. 언론매체에 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비리와  의혹이 쏟아져 나온다. 정치인은 ‘부패 백화점’의 단골손님이다.‘동지애로 똘똘 뭉친 좌파는 정권 탈취를 위한 선전·선동에 능하듯이 그들의 공동이익 추구 카르텔에도 능하다. 천하의 공물(公物)인 대한민국을  자기네 패거리의 사유물로 포획해 독점하려 한다. 작은 도둑은 처벌받는데 큰 도둑이  더 큰소리치고 활개 치는 세상이 우릴 허탈하게 한다.  좌파정권은 현란한 정의의 수사(修辭)로 도둑정치의 난정(亂政)을 은폐한다. 이러고도 대한민국이 온전하길 바랄 수 있을까.  대장동 의혹을 보라.  복마전이 따로 없다. 비리의 규모와 수법에 국민이 분노하는데 잘못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  이 의혹의 몸통으로 지목받는 사람은 “단군 이래 최대의 개발이익 환수”라고 주장하지만, 그 실체는 땅 짚고 헤엄치기 사업으로 드러났고, 이렇게 쉽게 벌어들인 엄청난 돈을 펑펑 지출한 건 국민을 더욱 허탈하게 한다.  권력이 국민 재산을 약탈하는 도둑정치는 개탄스럽다. 하지만 정권이 정의를 사칭하고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도둑질해 국민을 속이고 나라의 영혼을 훼손하는 것은 훨씬 무서운 일이다. 실물 자산은 복원할 수 있어도 국가를 이끄는 근본 가치와 규범은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정부패는 우리 스스로 재앙을 부르는 짓이나 다름없다.  만해 한용운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망국의 한이 크지 아니한 것은 아니나, 정복자만을 원망하는 자는 언제든지 그 한을 풀기가 어려운 것이다. 불행한 경지를 만나면 흔히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탓한다. 강자를 원망하고 사회를 저주하고 천지를 원망한다. 얼핏 보면 영웅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기를 약하게 한 것은 다른 강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며, 자기를 불행케 한 것은 사회나 천지나 시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망국의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 이상, 제이 제삼의 정복자가 다시 나타나게  된다. 자기 불행도, 자기 행복도 남에 의해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련하기도 하지만 가증스럽기가 더할 수 없다.”

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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