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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내게 금지된 것을 사랑한다

이기희

이기희

사랑은 불장난이다. 금지된 놀이다. 어릴 적에 헝겁으로 만든 인형을 업고 다녔다. 어머니 바느질 바구니에 남은 옷감 뒤져 이웃 옥이언니에게 주면 말랑말랑하고 예쁜 인형을 만들어 줬다. 삼베 쪼가리에 솜을 동그랗게 말아 넣어 머리 만들고 숯으로 눈썹 그리고 입술연지를 발랐다. 포대기에 싸매 인형을 없고 동네를 쏘다녔다. “희야 크면 엄마 노릇 잘 하겠다’라고 동네사람들이 칭찬했다. 근데 머슴애 동무와 손 잡고 미꾸라지 잡으러 가면 “어린 게 망측하다”며 혼이 났다.
 
‘금지된 장난’은 전쟁의 비극과 황폐함으로 파괴된 동심의 세계를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다. 심리 묘사 표현의 간결성, 밀도 있는 관찰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르네 클레망 감독은 아카데미 외국영화상을 수상했다.
 
독일군의 폭격으로 부모를 잃은 뽈레뜨는 죽은 강아지를 안고 헤매다가 근처 농가에 사는 미셀을 만난다. 미셀은 고아가 된 뽈레트를 집으로 데려와 강아지를 묻고 십자가를 세워준다. 살아있는 것이 죽었을 때는 십자가를 세워준다고 믿는 뽈레뜨를 위해 미셀은 새나 벌레, 죽은 동물을 모아 무덤을 만들고 십자가를 세워준다. 생명의 존엄성을 깨닫기도 전에 ‘죽음’을 장난의 도구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은 그들만의 ‘죽음의 의식’을 치룬다. 무덤의 숫자가 늘고 십자가가 더 필요해지자 미셀은 제단에 놓인 십자가나 형의 묘지에서 십자가를 훔친다.
 
동네사람들이 아이들의 ‘금지된 장난’을 알게 되고 뽈레뜨를 고아수용소로 데려가기 위해 헌병이 찾아온다. 전쟁 고아라는 딱지를 붙이고 혼잡한 정류장 대합실 구석에 서있던 뽈레뜨는 어디선가 ‘미셀’이라고 부르는 듯한 소리를 듣는다. 사실은 다른 사람을 부르는 이름이였다. 처음 집으로 데리고 왔을 때 뽈레트는 다락방이 어두워 무섭다고 했다. 미셀은 “무서우면 내 이름을 불러. 미셀, 미셀 하고. 언제던지 금방 달려올께’라고 뽈레트를 달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미셀, 미셀”부르며 울부짖는 뽈레뜨의 외침이 작아지면서 막을 내린다.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꽃을 따서 주는 소년에게 소녀는 말한다. “하나도 버리지 마라.” 사랑은 단 하나의 몸짓, 미미한 동작, 작은 목소리로 기억된다.
 
세계적인 시인 되기를 꿈꾸던 여대생이 연상의 미육군 보급사령관과 결혼했을 때 비난과 조소를 받았다.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창동감독의 중편소설 ‘전리’에는 가난한 문인의 사랑을 배신하고 미군 장교와 결혼해 시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여자에게 복수의 칼날을 겨누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문열의 ‘변경’에서는 가난한 애인을 버리고 백마 탄 왕자를 선택해 점령군의 아내가 된 경애가 등장한다.
 
문학작품의 소재는 도처에 있다. 내 결혼은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대구 문단에 파문을 일으키고 비난 받기에 충분했다.
 
결혼 후 한국 방문 때 작가 한 분이 “지금의 남편을 사랑하십니까?”라고 당혹한 질문을 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사랑한다’고 하면 식상한 대답이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면 돈과 물욕에 팔려간 셈이 된다. “지금 얼마나 남편을 사랑하는지 모르지만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 번개처럼 머리에 떠오르고 도움 청할 사람이 제 남편이다”라고 답했다.  
 
사랑은 선택이다. 금지된 장난이라 해도 사랑이 있었기에 행복했다. 바람처럼 손에 잡히지 않아도 따스했다. 불장난이라 해도 사랑은 물 주고 가꾸면 아름답게 꽃핀다. 나는 내게 금지된 것을 사랑한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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