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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흡 칼럼 저건 아닌데

  
나는 해병이다.  나는 해병대에서 장교로 5년간 복무한 후 1967년 6월 대위로 전역했다. 나는 믿는다. 해병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것을. 강한 훈련이 강한 군대를 만든다. 이것이 해병이다.  
 
며칠 전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보았다. 군기 빠진 후배들에 대한 어느 해병의 애정 어린 질타였다. 내가 해병이어서 그럴까. 관심 깊게 읽었다.  
 
“어제 지하철 건대역 입구 부근에서 전투복 입고 건들대던 한 후배 일병을 보고 그 패기(?)에 놀랐습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하는데 부대가 얼마나 흘렀으면 저리도 군기 빠진 모습으로 부대 밖을 당당히(?) 활보한단 말입니까. 또 며칠 전에는 길거리에서 탈모한 채 뒷짐 지고 배회하던 후배를 봤는데 요즘 선임 간부님들은 뭐 하는 겁니까. 원래 해병대 출타 때는 타군이나 민간인들에게 최고로 보이도록 몸도 햇볕에 그을리고, 몸도 다부지게 단련하고, 두발도 와일드하게 바싹 깎고, 정복 각(角)도 손이 베일만큼 다리고 A급으로 준비한 후 각종 인계사항 숙지 후 밖에서도 부대 안에서와 다름없이 약간 거칠고 악기로 가득 찬 눈빛과 잔뜩 기합 든 모습을 보여주곤 했는데 ... 실망스럽습니다. 예전 군대와 달리 맥 빠지고 군기 빠진 행태가 전군 공통이라 하지만, 그래도 해병대만은 딴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타집단과는 달리 해병대는 도전하는 자들만 받아서 거칠게 단련하다 보니 긴 교육훈련도, 힘든 훈련도 내무생활도 모두 ‘해병대’라는 긍지 하나로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후배들의 군기 빠진 모습을 보면 좀 화가 납니다..”
 
요즘 선거철이다 보니 각당 후보들이 단골로 찾아가는 곳이 해병대다. 이재명 후보도 해병대를 찾았다. 그런데 이 후보가 여기서 또 사고를 치고 말았다.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이 후보는 최근 경기도 김포시 해병대 2사단 방문 당시 사단장의 안내를 받으며 이동할 때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는 장면이 언론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이 후보는 군 관계자들과 달리 군복 상의 옷깃을 세운 모습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대통령은 국군 최고사령관인 군통수권자다.  빨간 명찰의 해병대 방한복을 입고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사단장 연대장과 걸어가는 모습은 대선후보의 품격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다.


 
몇 년 전 인기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 대위는 “군인은 늘 수의를 입고 산다. 이름 모를 전선에서 조국을 위해 죽어갈 때, 그 자리는 무덤이 되고 군복은 수의가 된다. 군복은 그만한 각오로 입어야 한다.”고 말했다.
 
군인에게‘입수보행’은 절대 있을 수 없는 행동이다. 이것은 군인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적용되는 규칙이다.  군인복무규율은 군인이 군복 차림으로 걸을 때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입수), 모자를 벗거나(탈모), 음식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는(취식)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군복 차림으로 입수ㆍ탈모ㆍ취식 보행은 3대 금기 사항이다. 국군통수권자가 되겠다는 분이 어떻게 이런 기본수칙 하나도 몰랐을까. 주위에서 참모들은 뭘 했단 말인가. 당연히 온라인상에서 누리꾼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군대 다녀온 남성들은 이 후보의 ‘입수보행’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했다.
 
“병역미필이라 몰라서 그렇다 치자,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감히 주머니에 손 못 넣지.”  
 
“군복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신성한 ‘국방’을 상징하는데 군복을 입고 저런 자세에 저런 표정이라니 군인에 대한 기본존중이 보이지 않는다. 군 미필이어서 몰랐다 해도 주머니에 손을 넣을 생각을 하는 게 놀랍다.”
 
한 네티즌은 “군대 갔다 온 사람이면 군복 입고 주머니에 손 넣고 걸으면 안 된다는 것쯤은 다 아는 사실”이라며 “그 분은 입수보행이 뭔지도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이 후보가 군 미필자여서 ‘입수보행’이 금기 사항이란 걸 모르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후보는 공장에서 일하다 다쳐 군 면제를 받았다. 다른 네티즌은 “군 면제 후보가 군복 입고 입수보행을 하니 더 안 좋게 보인다.”고 꼬집었다.
 
이 후보의 해병대 방문 논란을 보면서 떠오르는 또 한 사람이 있다. 미담 제조기로 불리는 유명 배우 정우성은 최종 학력 미달로 군 면제를 받았다. 2017년 11월 30일 정우성은 당시 주연이었던 영화 '강철비' 개봉 홍보 인터뷰 중 사격 자세를  취해달라는 리포터의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정우성은 건네받은 물총을 자신의 오른쪽 얼굴에 갖다 대고 오른쪽 눈을 가늠좌에 최대한 가까이 붙였다. 이 모습이 사뭇 진지하면서도 우스꽝스러워 주변에서 폭소가 터졌다.
 
정우성은 주변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명한 자세”라며 “아시는 분은 알 것이다”고 능청스럽게 말했다. 과연 정우성은 이 후보의 입수보행에 대해서도 "유명한 자세"라며 풍자할까. 정우성이 언급한 ‘유명한 자세’는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격 장면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 2007년 12월 전방 부대를 방문했을 때 소총 사격 자세를 취한 적이 있다. 이때 이 전 대통령은 어깨에 붙여야할 개머리판에 얼굴을 갖다 대 많은 군필 남성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정우성은 2016년 11월 영화 ‘아수라’ 단체 관람 행사에서 “박근혜 앞으로 나와!.”라고 호기있게 소리치는 등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수차례 드러내왔다. 공교롭게도 정우성 주연의 영화 '아수라'는 배경이 되는 가상 도시 ‘안남시’의 명칭 등 일부 소재가 성남시를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후보의 해병대 방문 논란을 보면서  대학 졸업 후 진해 해병학교에서 간부후보생과정 훈련을 받을 때의 악몽이 문득 떠올랐다. 그것도 ‘입수보행’이 화근이었다. 입교식을 마치고 며칠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어느 눈치 없는 후보생이 교내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다가 운 나쁘게 구대장의 눈에 띄었다. 그날 밤 후보생들은 팬티 차림에 완전무장으로 연병장에 집합하여 정신이 쑥 빠지는 단체기합을 받았다. 군기잡기의 시작이었다. 연병장 구보로 탈진할 즈음 차가운 바닷물 속에 들어가 겨울철 냉수욕(?)을 마친 후 다시 연병장에 도열하여 이번에는 엉덩이에서 불이 번쩍 나는 ‘빳다’ 세례식을 치루었다. 차가운 바닷물로 경직되었던 몸은 금방 화끈해지면서 노글노글해졌다. 겨울철 바닷물이 외기 온도보다 더 따뜻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60년 전의 일이다. 해병대는 아련한 추억이다. 해병대는 나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다.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다.  
 
 

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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