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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내 영혼의 ‘창고’

차고 문을 열었다. 거라지에는 식솔들의 삶이 만든, 희로애락의 길고 짧은 이야기들이 정차되어 있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차를 보관하는 공간인 거라지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쓸 물건들을 갈무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이든 그곳에 넣었던 나의 게으름 탓에 그곳은 이제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해졌다. 꽉 찬 거라지 문을 열면 뒤죽박죽 엉킨 사연들이 세월의 순서조차 무시된 채 뻥튀기 기계 속의 팝콘들처럼 마구 튀어나온다.  
 
거라지에 물건을 더 이상 보관할 공간이 없어지자 집안은 삶의 군더더기가 쌓여만 갔고 빈구석마다 겹겹이 얹어졌다. 과거의 역사와 살아 있는 역사 사이에 교통정리가 절실했다. 서둘러 지난 세월에 채워진 것들을 비워내고, 매일 생기는 삶의 부스러기들을 그곳에 옮기기로 했다. 과거에서 탈피하여 현실로 그리고 미래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늘의 허공이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듯이, 비운다는 것은 모든 것을 채울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을까. 어쩌면 채워짐과 비워짐은 칼날의 양면같이 한몸인 듯도 싶다. 그러기에 동양화의 여백도 채워진 푸른 숲의 풍경과 함께 그림의 일부로 간주되지 않는가.
 
오늘 아침 문득 떠오르는 해를 마주하며 가슴에 온갖 삶을 품은 탓에 정지된 채 미동도 못하고 서 있는 거라지가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거라지는 나를 닮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와 오늘과 미래의 세 시제에 다리를 걸친 채, 갖가지 희로애락의 감성이 포화상태로 채워져 숨이 멎을 듯 서있는 거라지는 바로 내가 아닌가. 오해와 집착, 아집과 애증이 만든 여러 부정적인 감정들이 엉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끝내는 더 이상 발을 디딜 수 없이 정지된 차고가 되어 세상 한가운데에 무기력하게 서 있는 나.  
 
새해를 맞으며 마음에 남은 어제의 찌꺼기를, 내일을 위해 정갈하게 정화시켜야겠다. 살라야 할 불순물이 많은 내 영혼에 정화의 불이 점화되면 그 불길은 삽시간에 커지고 거세질 듯싶다. 검붉게 타오를 아집과 편견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정적인 생각들. 하지만 한바탕의 거대한 소각이 끝난 뒤, 정화되어 생긴 빈 여백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투명하리라.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작은 나’에서 ‘큰 나’로 영혼이 성숙해지는 것이다. 내 혼이 작은 나를 비워내 허공과 같아지면 세상에 품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가슴을 허공같이 비워 주변 모두를 품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빈 공간의 너그러움 때문일 듯도 싶다.  
 
영혼의 거라지가 깨끗하고 맑게 비워지면  그곳에 넉넉한 선반을 달고 싶다. 그리고 그 선반 위에 ‘이해의 상자’ ‘소통의 상자’ ‘사랑의 상자’ 등 여러 개의 영혼이 따뜻해지는 상자들을 진열해 놓고 싶다. 그리하여 산골 옹달샘에서 솟는 끊이지 않는 샘물처럼 내 가슴의 거라지에도 끊이지 않는 포근한 사랑이 넘쳤으면 좋겠다.  
 
머지않은 언젠가, 내 영혼의 거라지에서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것 같다.

김영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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