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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50년 전 ‘한인록’에 담긴 이민역사

 1972년 남가주 한인회에서 한인회 창립 후 처음으로 발간한 한인록이 있다. 50년 전 남가주 한인사회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이민역사의 소중한 자료다.  
 
한인록은 남가주 한인회 역사를 간단히 서술하고 있다. 1962년 2월 김호, 김형순, 김원용, 송철 등 독립운동 원로들 중심으로 남가주 한인센터가 조직됐고 초대 위원장에 김호, 부위원장에 송철 선생이 임명됐다.  
 
1963년 2월 24일에는 남가주 한인회관을 구입했는데 주소는 ‘2559 West Olympic Blvd’로 현재의 한인타운 중심지에서 동쪽에 위치했다. 그러나 재정난으로 1967년 건물을 매각하고 추후 건물 구입을 위해 4만 달러 원금을 적립했다.
 
1965년 신 이민자들이 들어오면서 가주 한인회를 발족했는데 1968년 1월 14일 두 단체가 통합하여 남가주 한인거류민회를 설립했다. 초대 회장에 조용삼 박사가 선출됐다.  
 


한인록에는 4800명의 남가주 거주 한인 명단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름, 주소, 전화번호 등이 적혀 있다.
 
체육회와 부인회 등 단체들이 이미 조직돼 있었고 특히 18개의 한국 고교 동문회, 15개 대학 동문회, 7개의 미국 대학 동문회가 활동하고 있었다. 가장 많은 단체는 교회로 당시 44개의 한인 교회가 남가주 지역에 설립돼 있었다.
 
한인록에는 한인이 운영하는 다양한 업종의 비즈니스들이 광고로 소개돼 있다. 광고를 게재한 업종은 여행사, 마켓, 보험회사, 꽃집, 부동산 중개인, 언론사, 식당 등다양하다.
 
당시 한인들이 가장 많이 종사한 업종은 단연 무역회사로 77개 업소에 달한다. 두 번째는 가발업으로 57개 업소가 한인록에 수록돼 있다. 주유소 42개, 식당 24개, 마켓 20개, 리커스토어 11개가 당시 영업을 하고 있었다. 또한 10개의 여행사, 7개의 미용실, 양복점 (6곳), 사진관(5곳), 자동차 수리업소(5곳), 꽃집(4곳), 인쇄소(4곳), 보석상과 공예품점(각 1곳)이 문을 열고 있었다.  
 
전문직으로 7명의 의사와 3명의 치과의사가 환자들을 진료했고 6개의 한인 신문과 TV 방송국이 한인 사회의 소식을 전했다. 또한 11개의 회계 관련 업소가 있었다.
 
남가주 한인 사회는 1970년대부터 신규 이민자들이 급증하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는데 1972년 한인록은 초창기 남가주 한인 사회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50년 동안 남가주 한인사회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엄청난 성장을 거듭해 왔다. 초창기 남가주 한인사회를 이끌어준 ‘올드타이머’들의 노고와 희생 없이는 남가주 한인사회가 오늘날처럼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올해는 4.29폭동 3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지난 30년, 그리고 지난 50년 남가주 이민사를 돌아보면서 한인커뮤니티 미래의 50년 청사진을 새롭게 그려보자.

장태한 / UC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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