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LA폭동 디지털 박물관 세우자
오래 전 한인사회가 세운 원대한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LA폭동 한인 박물관은 30주년을 기리는 행사 준비로 북적였을 것이다. 한인사회가 하나가 되어 마련한 성대한 기념식과 심포지엄 같은 행사가 며칠을 이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박물관은 문을 열지 못했고 한인사회가 한뜻으로 뭉쳤다고 자부할만한 30주년 행사가 가능할까 싶은 쓸쓸함마저 든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다. 차라리 30주년이 되는 지금 디지털 박물관을 먼저 세우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한인사회는 오랫동안 땅 위에 박물관을 올려야 한다는 하드웨어 건설에 성과 없이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은 건 아닐까. 30주년이라는, 그저 지나칠 수 없는 시점이 임박했음에도 한 번 힘을 잃은 박물관 하드웨어 건설의 동력은 다시 살아날 기미가 많지 않다.
이해는 간다. 지난 2년 동안 세상을 덮은 코로나19의 위세는 그나마 남아있던 얼마 안 되는 시간마저 앗아갔다. 사람과 재원과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으는 구심력을 원심력으로 흩어놓았다.
그러니 차라리 순서를 바꾸는 것은 어떨까. 하드웨어를 세우고 그 안에 소프트웨어를 채우는 기존의 청사진을 버리고 소프트웨어를 먼저 채우고 건물은 나중에 짓는 것이다. 인터넷 공간에 박물관을 세운다면 하드웨어 건설에 필요한 의견 수렴과 비용 마련에 발이 묶이지는 않을 것이다.
박물관 건설은 사실상 이미 실기했다. 미련을 갖는다고 해결될 것도 없어 보인다. 이렇게 또 몇 년이 지나면 35주년, 40주년이 될 것이다. 그럴수록 폭동을 경험한 1세대는 동력이 더 약해질 것이다.
디지털 박물관은 원대했던 계획에 비하면 작은 것이겠지만 작은 성취가 큰일을 이루는 힘이 되기도 한다. 하드웨어 마련 부담이 사라지면 힘을 소프트웨어에 집중할 수 있어 속도가 생길 것이고 35주년에는 소프트웨어 완성을 기념할 수도 있다. 소프트웨어 완성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와 시행착오가 바탕이 된다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하드웨어 청사진이 자연스럽게 그려지지 않을까. 40주년에는 오프라인 박물관에서 성대한 기념식을 치를 수도 있다.
LA폭동 박물관은 참화의 비명만을 기록한 회고가 아니다. 이민의 첫발을 디딘 꿈과 꿈이 불타는 비극, 불덩이 속에서 일어나 번영과 번성을 이룬 불사조의 비상을 기록하는 것이며 미래의 경계를 바위에 새기는 일이다.
박물관은 한인 1세대가 2세대에 물려주는 한인의 사서이면서 미국 소수계 이민사의 찬란한 페이지이기도 하다. 또 한국사에서는 한국인 디아스포라의 벅찬 순간이기도 하다.
LA 한인사회는 주류사회의 일원이면서 독자적인 문화와 상권, 정치력을 확보한, 전 세계 한인 이주사에서 가장 번성한 커뮤니티다. 그것은 한국인 디아스포라가 공유하고 있는 가치 즉, 어떤 가시밭길 속에서도 생존하고 다음 세대를 낳고 기르고 교육한 결과이기도 하다.
모든 세대는 저마다의 십자가를 진다고 한다. 한인 1세대는 하루가 멀다고 발생하는 총격사건을 겪으며 부를 일궜고 폭동의 절망을 이기며 2세대를 당당한 한국계 미국인으로 키웠다. 이제 1세대가 자신만의 십자가를 지고 걸어야 하는 마지막 걸음은 LA폭동 박물관일지도 모르겠다.
안유회 / 사회부장·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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