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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어느 날 방문했던 환자

작고 큰 나무의 잔가지에 안개처럼 수줍게 돋아나는 연초록, 겨울의 끝이 보이는 어느 3월의 이른 아침입니다. Eliot Avenue를 왼쪽으로 돌아서 반지하에 위치한 오래된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대기실 땅바닥에서 놀고 있는 귀여운 여자아이를 보았습니다. 방긋 웃는 아이를 들어, 앙증스럽게 입은 치마의 먼지를 털어주고 아기를 엄마에게 안겨주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환자를 볼 준비를 하였습니다.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따뜻한 커피가 책상 위에 있었습니다.  
 
첫 환자는 방금 보았던 아기 엄마로 30이 안 돼 보이는 젊은 남편과 함께하였습니다. 유럽 악센트의 영어를 구사하는 차분하고 예의 있는 젊은 백인 부부였습니다. 진료하면서 계란 크기의 우측 유방의 종양과 딱딱하게 뭉쳐 있는 겨드랑이의 임파선을 보면서, 언제 발견하였는지 묻자 약 1년 되었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녀는 나의 눈을 응시하며 크게 걱정하는 듯하였습니다. “유방의 질환이 이렇게 뚜렷해지도록 1년 동안 무엇을 하였는가” 하는 질책이 마땅했지만 하지 못했습니다. 그녀 또한 유방암이 의심되는지 묻지는 않았습니다. 유방 종양의 세침 조직검사를 한 후  일주일 후에 결과를 보고 치료에 대해 상의하기로 하였습니다.  
 
환자가 떠난 후, 비서 메리 로즈로부터, 그녀가 유럽에서 이민 온 지 약 1년이 되나 건강보험이 없으며 아직 남편이 마땅한 직업이 없다고 했습니다. 진료비의 일부분을 현금으로 내고 갔으며, 아기에게 잊지 않고 사탕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녀의 조직검사 결과는 유방암으로 나왔으며 유방암 중에서도 자라는 속도가 빠른 TNBC(Triple Negative Breast Cancer)였읍니다. 하루 오후 시간을 내어, 퀸즈에 있는 시립병원 유방암 외과에 전화하여 이 환자의 외래 진료 약속을 잡아 놓았습니다. 일주일 후 그녀의 방문이 있었습니다. 조직검사 결과를 전했습니다. 그녀는 자기 걱정이 현실로 다가옴에 크게 눈물을 보였습니다.  
 
젊은 부부는 몹시 걱정하는 모습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서 있었습니다. 건강보험이 없어 부득이 시립병원에서 치료받도록 예약한 것, 시립병원에도 유능한 외과 의사가 있으며, 형편에 따라 무료 진료와 치료가 가능함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암이 완치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도록 부탁하였습니다. 그녀의 젊은 남편, 알맞은 키에 자존심을 말해주는 듯한 맑고 깊은 갈색 눈을 가진 그는 서툰 손짓으로 흰 봉투를 책상에 놓으며 “지난번 지불하지 못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의자에서 일어나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어깨에 두 손을 얹은 채 말했습니다. “저보다 20년은 젊으신 것 같은데, 잊으셨군요, 지난 진료 때 당신께서 모든 것을 지불하신 것을.” 나는 그의 흰 봉투를 그의 손에 돌려주었습니다. 그때 반쯤 열린 문으로 메리 로즈가 소리쳤습니다.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진료를 마치고 오후 Eliot Avenue를 돌아서는데, 때 이른 작은 흰색 나비 한 마리가 만개하기 시작한 개나리 나뭇가지 끝에 위태롭게 앉을 듯하다 날아갔습니다.

성갑제 / 외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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