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선 이후 한·일 관계 전환점 맞을까
한국·미국·일본의 동북아시아에서의 전략적 취약점은 악화한 한·일관계다. 이 세 민주주의 국가가 역내 규범에 기반을 둔 국제 질서를 지키지 못하고 도발과 공격을 저지하지 못하면, 이익은 오롯이 북한과 중국·러시아에 돌아간다.대선을 앞둔 한국의 진보와 보수 후보 진영은 모두 한·일 관계 악화가 한국의 전략적 입지를 심대하게 손상시켰다고 본다. 이재명·윤석열 후보의 외교·안보정책을 총괄하는 인사들은 한 달 전 ‘중앙일보-CSIS 포럼 2021’에 참석해 대일 관계 회복 의지를 밝혔다.
일본 정계 내 변화도 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임명한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은 하버드 시절 미 의회에서 일했고, 한국과 중국의 정계 인사들과도 친분을 쌓아 온 국제주의자다.
이달 부임하는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 대사는 한·일 관계 회복이 자신의 핵심 임무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아직 지명되진 않았지만(바이든 정부로선 곤혹스러운 일이다) 부임할 주한 대사는 이매뉴얼과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협력할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예감은 좋지 않다. 한국의 외교 전문가들은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역사적인 한·일 회담에 필적하는 관계 전환이 일어나길 바란다.
오부치 총리는 과거사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사죄를 표명했다. 김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며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역할 확대를 지지하고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했다.
2022년에도 유사한 정상 회담이 이뤄진다면 최고겠지만, 1998년 상황이 재연될 것 같진 않다.
주된 문제는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이 성향 불문하고 위안부 및 강제 징용 문제에 더 타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으로 모든 대일 청구권 문제가 해결됐고, 2015년 박근혜-아베 합의에서 위안부 문제는 종결됐다는 게 이들의 정서다.
김대중과 오부치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해결한 것인 만큼 한국은 외교 규범상 이미 해결된 문제에 일본이 더 양보하길 기대해선 안 된다는 관점이다. 기시다 총리는 “공은 한국에 있다”는 말로 이 점을 분명히 했다.
기시다 총리, 하야시 외무상이 새로운 타협안을 내길 원해도 실행은 쉽지 않다. 2015년 합의 당시 기시다 총리는 외무상으로 위안부 합의를 주도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합의를 번복했을 때 자민당 내에서 거센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일·중 우호연맹회장을 지낸 하야시 외무상도 중국에 지나치게 유화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어 한·일관계에 몰입할 여력이 없다. 지난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다카이치 사나에가 선전한 것도 이런 당 기류의 반영이다.
일본 내 국제주의자들도 향후 한국의 정부나 법원, 국회 다수당이 합의를 또 던져버릴 수 있지 않으냐는 분위기 때문에 일본 정부더러 타협하라고 주장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김대중-오부치식의 포괄적 해결은 이상적이지만 위험도 있다. 더 수월한 첫걸음은 다른 의제로 분위기를 바꿔보는 거다. 지정학적 관점이다. 일본 전문가들은 한국이 중국의 아시아 패권 야심에 동조한다고, 한국 전문가들은 일본이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안보협의체)와 해양 민주국가 연대를 강조해 과도하게 중국과 긴장을 조성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아시아의 밝은 미래를 원하는 두 나라의 관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 중국의 패권주의를 경계하고, 역내 미국의 강한 리더십을 원한다.
해결 불가능한 문제에 매달려 화해의 가능성을 낮추기보다, 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지역을 위한 협력, 인프라 금융과 여성 역량 강화, 민주주의 지지에 양국 간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공유하는 가치와 이익을 위해 협력하고 신뢰를 쌓으며 구축된 선의의 관계는 두 나라 앞에 놓인 난제들을 없애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마이클 그린 /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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