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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새해 결심 1순위는 ‘정리하기’

박낙희 경제부 부장

박낙희 경제부 부장

유년 시절부터 유난히 손으로 기계 만지는 것을 좋아했다. 할머니가 아끼던 자명종 시계, 라디오를 다 뜯어 놓질 않나 백색 유선 전화기를 전기 콘센트에 꽂아 날려버렸던 기억이 난다. 뜯어낸 부품들로는 로봇이나 자동차 모양의 장난감을 만들었다. 세상에 하나뿐이라는 애착이 가서 모아두기 시작했다. 구슬치기도 유리구슬 안에 있는 형형색색의 무늬가 좋아 놀이보다는 모으기에 열중했다.  
 
실물을 그대로 축소한 장난감 프라모델도 조립해 만드는 즐거움에 색칠까지 할 수 있어 푹 빠졌다. 공부는 안 하고 프라모델만 만들어대니 부모님이 반길 리 없었다. 결국 동네 프라모델 전문점 아저씨에게 부탁해 하굣길에 가게에 들러 하나씩 만들고 보관했다. 가짓수가 늘면서 집으로 가져오는 프라모델이 많아져 디오라마를 만들었고 작품을 본 부모님이 대형 장식장을 주문해 거실에 멋지게 전시해 놓을 수 있었다.  고학년이 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 차츰 애장품들로부터 멀어지게 됐다. 어느새 손때 묻은 장난감들은 모두 창고 신세로 전락했다.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를 볼 때마다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감동과 향수에 젖는다.  
 
습성이 어딜 가겠는가. 지금도 가전용품이나 전기제품 등이 고장 나면 일단 뜯어 본다. 전문기술은 없지만 앰프, 커피 그라인더, 세라믹 히터, 선풍기부터 시작해 차 브레이크 패드, 음식분쇄기, 거라지 도어까지 수리해 봤다. 식구들이 핸디맨으로 전직하라고 할 정도다. 수리가 어려울 경우 재활용 부품들을 별도로 모아두는 데 종종 요긴하게 사용된다.  
 
운동을 좋아해 각종 용품도 거라지에 쌓여있다. 문제는 중요한 물건은 백업용으로 중복 구매하기 때문에 고장이 나면 바로 대체 가능해 유용하지만 평소엔 그저 자리만 차지할 뿐이다. 이러니 집안이 물건들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중앙일보 조인스 파워 블로거로 활동할 때도 포스팅 유형을 분석한 결과 별명이 ‘수집 대마왕’이었다. 여기저기서 유용한 정보들을 찾아내 분야별로 모아둔 덕분에 매일 평균 2000명이 찾아오곤 했다.
 
얼마 전 한국에 있는 동생이 창고 정리하는데 내 물건이 한 트럭이라며 연락이 왔다. 순간 하나둘씩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흔들렸다. 고민 끝에 처분하라고 했더니 동생이 정말 그래도 되냐며 해가 서쪽에서 뜨겠단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리는 데는 곤도 마리에가 적잖은 영향을 줬다. 일본의 정리 수납 전문가로 넷플릭스에서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프로그램으로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켰다. 정리방법은 간단하다. 의류부터 시작해 책, 서류, 소품, 추억의 물건 순으로 물건을 만져서 설레지 않으면 미련 없이 정리하라는 것. 매몰찬 결단을 내려야 가능한 이야기로 시도해본 사람이라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공감할 것이다.
 
수년째 새해 목표 중 하나가 ‘정리하기’가 됐다. 정리하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버리는 것보다 다시 박스로 들어가는 것이 더 많다.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한 정리 역시 버릴까 말까 고민하느라 진척이 안 되고 있다. 시간 날 때마다 버리는데 수년간 먼지만 쌓여 이걸 왜 안 버렸나 싶을 물건들이 태반이다. 조금씩 빈 곳이 보이기 시작하니 섭섭하기 보다는 시원하긴 하다.
 
한 박스에서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받았던 톰보 색연필 세트가 나왔다. 알루미늄 케이스에 향기와 색상이 너무 고와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40년 넘게 보관해 왔다.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쓰라고 줬더니 아빠가 썼던 색연필이라며 엄청 기뻐한다.  
 
수필가 이노우에 가즈코가 저서 ‘50세부터의 인생을 심플하게 하는 100가지 방법’을 통해 물건에 대한 집착과 미련을 버려야 삶이 풍요로워진다 했는데 올해도 ‘정리하기’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을 듯하다.

박낙희 /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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