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감독의 ‘섬뜩한 로봇’
A.I. 인공불멸
(A.I.: A.rtificial I.mmortality)
영화에서의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은 대체로 인간의 뇌에서 추출한 의식을 컴퓨터 칩에 탑재하는 형식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감정을 지닌 로봇 데이비드가 2001년 스티브 스필버그의 ‘A. I.’에 등장하면서 ‘공상 과학’ 정도의 차원에서 인식했던 인공지능에 변혁이 일기 시작했다.
어느덧 인류의 과학은 그간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AI를 단순한 지능을 지닌 로봇에서, 사람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로봇,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3D 아바타, 클론 등 상상을 초월하는 형태로 발전시켜 왔고 그 진화 과정은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되고 있다.
캐나다 출신의 한인 다큐멘터리 작가 앤 신이 연출한 ‘A.I. 인공불멸’에서 보게 되는 인공지능(들)은 경이롭게 느껴지기보다는 섬뜩함으로 다가온다. 앤 신은 먼 미래의 일로만 여겼던 인공지능과 로봇 산업에 대하여 상당히 구체적인 설명을 이어간다. 그러나 그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인공지능의 발전상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라는 시대에 점차 그 빛을 잃어가고 있는 인간애의 회복이다.
2015년작 ‘엑스 마키나’는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로봇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공지능 이바는 선천적으로 주어진 기능에 자신의 창조주 인간과의 대화로 얻어진 의식을 축적해간다. 신이 내린 의식을 스스로 개발해 내는 설정이다.
인간의 의식을 넘어 인간의 감정까지도 인공지능에 탑재한다는 게 얼마나 가능한 일일까. 이 대목에서 떠올려지는 영화는 호아킨 피닉스가 로봇의 목소리에 위로받는 영혼 테오도르로 출연하는 ‘그녀’(Her, 2013)일 것이다. 몸체는 없고 목소리만 있는 로봇 사만다는 ‘온 맘’을 다해 주인공의 외로움을 위로한다.
인간의 영혼을 불멸한다고 여겨왔던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의식과 감정은 오로지 신의 작품이다. 기독교는 인공지능 개발의 동기를 ‘하나님처럼’ 지배하고픈 인간의 욕망으로 본다.
왜 로봇들은 사람이 되려고 할까 하는 질문에 앞서, 왜 인간들은 로봇을 사람처럼 만들려고 할까 하는 주제에 대한 사유가 순서일 듯싶다. 인간애를 되찾기 위한 인류의 회귀본능까지 로봇에게 의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김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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