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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청소하기, 마음 비우기, 감사하기

임인년(壬寅年)은 만나기 어렵다는 검은 호랑이의 해다. 한반도 지도를 호랑이로 표현하듯, 호랑이는 민족의 영물이다. 실은 우리 절 법당에도 모셔져 있다. 자그마한 산신단이 있는데, 영험해 보이는 산신님 옆에서 호랑이가 두 눈을 부릅뜨고 내려다본다. 처음엔 신령스러운 눈을 마주 보기가 무섭더니, 맨날 봐서 그런지 언제부턴가 듬직한 보디가드처럼 친근해졌다.
 
호랑이 얘길 하니, 생각나는 일이 있다. 예전에 한 일본 스님이 내게 사주를 봐준 적이 있었다. 됐다고 하는데도 한사코 봐주겠단다. 쭈뼛쭈뼛 망설이는 내게 하는 말이 “비구니니까 범띠만 아니면 된다”는 거였다. 그 말에 갑자기 웃음이 터져 피식 웃었더니, 급 눈치를 채고는 “괜찮아, 괜찮아, 범띠라고 어디 다 같은가. 갑인생만 아니면 되지” 했다. ‘내 원 참…’ 어이없어 웃음이 터진 나를 보고 멋쩍었는지, 그럼 사주 말고 별자리를 봐주겠다고 했다.
 
“괜찮습니다. 안 봐주셔도 됩니다.” 정중히 거절하자, 자기가 별자리를 잘 본다며 이번엔 ‘사자자리’만 아니면 된다고, 당당하게 내 사주를 물었다. 아니 이걸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허허 웃는 내게 “설마 호랑이띠 갑인에, 별자리가 사자자리인 겁니까?”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더니, 결론은 “볼 것도 없으니, 스님 뜻대로 사시오”였다.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대체 왜 이러는 걸까. 가만 보면, 동양인들은 여성이 큰 띠면 팔자가 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은 덜 하지만, 옛날에는 더 심했다. 그 옛날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맘대로 결정하지 못하고, 운명적인 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고작 띠 하나 때문에.
 


나도 출가 전에는 사주 때문에 팔자가 셀 거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게다가 여덟 글자 모두가 양(陽)이라 ‘양팔통 사주’라며 어른들이 고개를 저었다. 남자아이 같으면 크게 될 거라며 박수칠 텐데, 여자아이인지라 되레 주눅이 들었다.
 
그러던 것이 ‘독 안에 들어가도 팔자 도망은 못 간다’고 했던가. 사주를 믿진 않지만, 보편적인 삶에서 벗어나고픈 충동이 커질 때마다 곧잘 사주 탓을 했다. 사주 때문에 출가한 것인지는 몰라도 이제 와 먹물 옷을 입고 돌아보니, 큰 행복은 없어도 마음 하나 편하기에 출가하길 잘했구나 싶다.
 
어쨌든 이렇게 연초가 되면 사람들은 운세 타령도 하고, 각자 자기 운세도 궁금해한다. 힘든 세상에서 갈팡질팡 비틀거리다가 그나마 운이라도 좋다고 하면 그 말에 위안을 얻나 보다. 한편 어떤 이들은 “어떻게 하면 운이 좀 좋아질까요?” 묻기도 한다. 내가 알기론 좋은 운을 부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첫째, 청소하기! 주위를 단정히 하고, 정리정돈하면 좋은 운이 깃든다.
 
둘째, 마음 비우기! 힘 있는 사람 곁에서 이해득실 따져가며 살면, 운의 기복이 심해져 낭패를 보게 되니, 세상사에 얽매여 마음 어지럽히지 말라는 말이다.
 
셋째, 감사하기! 모자란 듯 덤덤하게 만족하며 살자는 얘기다. ‘고문진보’에 “둔한 자는 오래 살고, 뾰족하고 날카로운 자는 일찍 죽는다. 가령 붓은 날카롭고 뾰족하다. 따라서 빨리 못 쓰게 된다. 벼루는 둔한 것이라 오래 쓸 수가 있다”는 말이 있다. 영리하고 날카롭게 잇속을 챙기기보다는 무던하게 삶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행복을 부르는 비결이다. 결국 운을 부르는 것도 다 내 마음먹기 나름 아니겠는가.
 
바람에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한 스님이 말했다. “깃발이 흔들리는구먼.” 다른 스님이 말했다. “바람이 흔들리는 것일세.”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육조 혜능 스님이 말했다. “바람이 흔들리는 것도, 깃발이 흔들리는 것도 아닐세. 그대들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일세.”
 
올해도 꿋꿋하게 잘 견디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원 영 스님 / 청룡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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