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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정다운 벗 호랑이의 '꾸짖음'

 2022년 새해는 임인(壬寅)년 호랑이 해다. 호랑이는 사납고 무서운 맹수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 한국 사람들과는 매우 친숙한 동물이다. 건국신화인 단군신화부터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부터 이어진 오랜 인연이다. 옛날이야기나 속담, 그림 등에도 자주 등장해 마치 가까운 벗 같은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호랑이를 무섭게 그린 맹호도도 많지만 옛날 이야기나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무섭기는커녕 어리숙하고 해학적이다. 귀엽기도 하다. 곶감을 무서워하고, 마치 고양이 같은 모습으로 까치와 대화를 나누고, 토끼가 불 붙여주는 곰방대로 담배 피우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산신령을 태우고 다니는 호랑이도 순둥이의 모습이다. 그런 친숙한 호랑이의 현대판이 88 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인 호돌이다.
 
호랑이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으로 대표적인 것은 단연 연암 박지원의 ‘호질(虎叱)’이다. 조선시대 후기의 한문 단편소설로 해학과 풍자가 통쾌하고 재미있는 작품이다. ‘호질’은 ‘호랑이의 꾸짖음’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줄거리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호랑이가 배가 고파서 사람을 잡아먹으려 하는데 무엇이 마땅하겠느냐고 묻는다. 부하들이 냉큼 의원과 무당을 권하며 왜 맛있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호랑이는 의원은 잡아먹자니 의심이 나고, 무당의 고기는 불결하게 느껴진다며 퇴짜를 놓는다. 결국 청렴한 선비를 잡아먹기로 한다.
 
그리하여 먹잇감으로 등장하는 것이 북곽선생이라는 선비로 학식이 높고 인격이 고매하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때 같은 마을에 동리자라는 젊은 수절 과부가 있었는데 정절을 굳게 지키기로 소문이 자자해 나라에서 상을 내릴 정도였다. 하지만 사실은 소문과는 달라 그 여자의 다섯 아들이 저마다 성이 다른 각성(各姓)바지였다.
 
한데, 북곽선생과 동리자가 눈이 맞아 정을 통하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밤 아들들이 엿들으니 엄마방에서 북곽선생의 소리가 나는지라 설마 인격 고매하신 북곽선생께서 이 밤중에 엄마방에 계실리가 만무하니 저것은 둔갑한 여우가 틀림없다 하고 몽둥이를 들고 뛰어들었다.
 
북곽선생이 꽁지가 빠지게 도망쳐 달아나다가 어두운 밤중이라 거름구덩이에 풍덩 빠지고 만다. 발버둥치다가 가까스로 기어 나오니 눈앞에 커다란 호랑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호랑이는 냄새가 고약해 도저히 잡아먹을 수가 없다고 물리치며 한바탕 근엄한 훈계로 북곽선생을 엄하게 꾸짖는다. 북곽선생은 정신없이 머리를 조아리고 목숨만 살려주기를 빌다가 머리를 들어보니, 호랑이는 보이지 않고 아침에 농사일을 하러 가던 농부들만 주위에 둘러서서 측은하게 내려다보고 있더라는 이야기.
 
작품은 공부 많이 해서 학식 풍부한 선비의 위선과 아첨, 이중인격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정절로 소문난 과부의 방탕한 일탈을 야유하고, 의원과 무당 등에 대해서 풍자하는 등 사회상을 고발해 조선시대 풍자문학의 걸작이라고 평가된다.
 
만약 이 호랑이께서 미주 한인사회에 납신다면 누구를 잡아먹으려다 말고 큰 소리로 꾸짖으실까? 겉은 누런데 속은 새하얀 바나나? 미국 사람의 나쁜 점과 한국인의 결점을 합쳐서 똘똘 뭉쳐놓은 인간? 백인 앞에서 주눅 들어 눈치만 살피다가 가난한 유색인종 앞에서는 거들먹거리며 욕질해대는 중생? 걸핏하면 소송 걸며 변호사 찾아다니는 지식인? 돈이면 안 되는 일 없다고 우기는 졸부, 세상에 자기만 옳다고 바락바락 악쓰는 인종? 아무튼 엄한 꾸짖음 들을 인간들 참 많을 것 같다.
 
그나저나 새해가 호랑이의 해라니 용맹한 호랑이가 와서 코로나 좀 박살내주면 고맙겠다. 일상으로 돌아가 마스크 벗고 사람 마음대로 만나며 살았으면 정말 좋겠다. 설마 호랑이가 코로나 무서워서 마스크 쓰고 나타나는 건 아니겠지?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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